오륜교회

이렇게 감사하라<2010.10.31/제22권 44호>

꿈 꾸는 소년 2010. 11. 1. 03:49

☞ <신 16:13~17>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草幕節을 지킬 것이오. 14.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아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 초막절(레 23:33~43)

 

 □  왜 절기를 지켜야 하는가?

 

 이스라엘 3대 절기는 逾越節(無교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草幕節(收藏節)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절기의 특징은 바로 감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허락하시고 지키도록 명하신 것은 바로 감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까?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처럼 不幸하고 詛呪스러운 인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고통도 아니다. 만일 하나님이 저주가 있다면 첫째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처럼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凡事에 感謝하라" 말씀하셨고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 감사의 對象 

 

 감사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대상이 없는 감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감사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15절a)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이런 표현을 보면 감사의 대상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 할 대상이 참 많습니다. 부모님에게도 감사해야 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가르쳐준 스승과 멘토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직장과 그 직장의 상사와 동료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때로는 자녀들에게도 감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 모든 만남과 이 모든 축복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스승에게, 아내와 남편에게, 직장과 그 상사에게 감사할지라도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첫째, 함께 감사하라(14절)

 

 이 초막절을 지킬 때 어떻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까? 너와 네 자녀만이 아니라 노비와 성 안에 居住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므로 이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비와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배려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불러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즐기라는 것입니다. 자신들만의 축제가 아닌 더불어 축제를 하라는 것입니다. 추수 감사절이 소유의 축제가 아닌 나눔의 축제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초막절만이 아니라 다른 절기를 지킬 때에도 이웃들과 함께 나눔으로 이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 혼자만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들, 세상의 약한 자들과 함께 그것을 나누며 즐거워하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정신이고 감사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나와 네 집의 감사로만 끝내지 마시고 그 감사를 이웃들과 나누십시오. 나눔이 없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둘째, 먼저 감사하라(15절b)

 

 우리는 많은 경우 감사를 하되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복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한 마디로 받은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감사는 받은 것을 인하여 감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베풀어 주실 은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초막절 절기를 지킬 때 "여호와께서 네 모든 所出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因하여 穩全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받는 은혜만이 아니라 앞으로 받을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받을 복을 인하여 감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보면 감사가 언제나 먼저 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먼저 감사하셨습니다(마14:19). 또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도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요11:41절b).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한 밤중에 찬양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着錮(차꼬)가 풀어지고 간수와 그 가족이 구원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적이 먼저가 아니라 감사가 먼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염려가 먼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4:6~7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합니다. 염려가 먼저가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아뢰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럴 때 모든 知覺에 뛰어난 하나님의 平康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기적을 원하신다면 먼저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통하여 행하실 일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꿈과 비전을 통하여 행하실 일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흥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信實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반응입니다.

 

 셋째, 드리며 감사하라

 

 16절의 말씀을 보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나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지원하는 마음으로 禮物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에는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드림이 없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의 표현이 무엇입니까? 감사는 단순히 심리적인 느낌이 아닙니다. 감사는 바로 드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으로 감사하고 입으로는 감사하면서도 드림이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에는 드림이 있습니다.

 행복은 언제나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한 것이 아니라 감사와 정비례한 것입니다.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지금 이 모습 이대로를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