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보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2010.10.17/제22권 42호>

꿈 꾸는 소년 2010. 10. 25. 19:32

☞ <빌 2:19~24> 

 성경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왜냐하면 바울만큼  偉大한 신학자가 없고 使徒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로마서를 비롯하여 無慮 14권을 기록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3차례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곳곳에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 세계에 확장시킨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기독교신학을 정립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가장 위대한 사도이었고 뛰어난 선교이었고 위대한 신학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위대한 선교사,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바로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바울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신실한 동역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울의 동역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보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몇몇 사람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장이라도 달려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미결수의 신분으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교회를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속히 빌립보교회에 보내고자 했습니다(19,23절). 성경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가지 못하는 상황일 때 언제나 디모데를 보내었습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어떤 교회에 소식을 전하거나 때로는 충고나 격려나 지도와 책망을 하려고  할 때  디모데를 보내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교회에도 디모데를 보내었고(살전3:6) 고린도교회에도 디모데를 보내었고(고전4:17) 빌립보교회에도 디모데를 보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보내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바울이 가장 보고 싶어했던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를 보면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쓸쓸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노 사도인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9)"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딤후4:21). 사도 바울은 이 땅을 떠나는 최후의 순간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간절히 보기를 원했습니다. 사람은 죽기 전에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이 땅에서 눈을 감기전에 보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보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오륜의 모든 가족들이 디모데처럼 보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

 

 첫째로, 뜻을 같이 한 사람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속히 보내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디모데를 보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20절)" 왜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내려고 합니까?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은 곧 생각이 같고 목적이 같고 방향이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의 만남이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뜻이 같은 만남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뜻이 서로 다르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혼을 했지만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열심보다 방향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서로의 방향이 다르면 열심히 사는 것 만큼 불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뜻이 같아야 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한 사람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21절). 디모데가 바울과 뜻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의 일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고 예수의 일을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 자기의 일을 구하고"라는 표현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보다  자기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보다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보다 자기의 일을 구합니다. 예수를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아갑니다. 예수를 위해 산다고 말하면서도 자녀교육과 가족들의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이유이고 우리의 삶의 소망이고 우리의 인생의 해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 있든지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거나 해를 입히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됩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나의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느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에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는 자신의 인생의 처음과 나중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고자 했던 이유는 디모데가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고자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22절). 복음을 위한 수고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면서 받았던 逼迫들을 말합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平坦하게 자란 디모데였지만 바울과 함께 매를 잦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바울과 함께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헐벗고 살해의 위협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디모데의 연단이라고 본문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다"라고 말할 때 수고하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노예처럼 수고하다"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정말 노예처럼 복음을 위해 수고 했습니다. 쉬고 싶고 가고 싶지 않아도 바울이 가라하면 그는 갔습니다. 남아 달라고 하면 언제나 그곳에 기쁜 마음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바울을 위해 수고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다라고 말합니다. 디모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오륜교회 모두 성도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을 위해 수종드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