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
恩惠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救援을 이루어가야 합니다(1절). 그런데 항상 服從하고 怨望하지 않으며 聖化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쓰고 애쓰고 努力해도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우리의 힘만으로는 항상 복종할 수 없고 우리의 힘만으로 원망과 是非가 없는 삶을 살 수 없고 우리의 意志만으로는 구원을 이루어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우리 안에 居하고 계시는 聖靈님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찾아 오사 우리 안에 居處를 定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십니다.(요14:17).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고 교회를 다녔을지라도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거하고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교인일 뿐이지 그리스도으 사람은 아닙니다(롬8:9). 그러면 왜 성령님은 우리 안에 찾아오셔서 永遠토록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실까요? 한 마디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保惠師로 찾아오셨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항상 곁에 계신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 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를 도와 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8:26절a)" 성령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마음먹고 결심한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 안에 찾아오셨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연약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내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 우리 안아ㅔ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내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성령님은 자신이 軟弱함을 알고 성령님을 依支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말할 수 없는 嘆息식으로 우리를 위해 親히 懇求하심으로 도우십니다(롬8:26절b). 오늘도 성령님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그런데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은 分明한 目的을 가지고 행하십니다. 아무렇게나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분명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기쁘신 뜻이란 무엇을 意味합니까? 본문의 文脈에 비추어 살펴보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속에서 欠없고 純全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가운데서 빛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항상 복종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절대로 우리의 욕심과 야망을 위해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일하시지 우리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행하실 때 자기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십니다.
□ 성령께서 어떻게 행하시는가?
첫째로,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실 때 먼저 우리 안에서 행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함으로 도우십니다.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밖에서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우리 밖에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안에서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1:29절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과 환경 가운데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사건과 상황 속에 개입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건과 상황 속에 개입하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서 생각을 통하여 일을 행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처하여 있는 상황보다 내 안에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내가 처하여 있는 상황만을 바꾸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은 먼저 내 안의 생각이 바뀌어지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은 이와 같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로,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은 먼저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하십니까?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이루어나가실 때 먼저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의 구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할 때 어떤 사역을 맡기고자 할 때 먼저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사모하게 하시고 그것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따라 행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정말 이격적인 분이십니다.
□ 마음의 소원을 품고 행하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 안에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 앞에서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따라 살았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요. 그의 어린 시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소원을 주셨습니다. 꿈을 통하여 지도자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소원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을 잊지 않았습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마음의 소원을 따라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가졌다면 그 마음의 소원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 마음에 소원이 이루어지기까지 내 젊음을 바치고 열정을 바치고 그 마음의 소원을 따라 행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아름다운 소원을 주셨어도 우리가 반응하지 않으면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 마음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시는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여 달려 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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