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服從하여 두럽교 떨림으로 너희 救援을 이루라.
□ 어떻게 구원을 이루는가?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습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구원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하여 페달을 발로 밟아야 하듯이 우리의 구원도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두렵고 떨림으로 나의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복종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첫째로 항상 복종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가려면 먼저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을 代言하는 자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복종이 없이는 절대로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말씀과 지도자에 대한 복종이 없이는 하나님이 일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과 축복은 모두 복종과 順從을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도록 갈릴리 바다에서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가 말씀에 복종하여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약속의 말씀대로 침묵하며 매일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에 7바뀌를 돌고 난 다음 믿음의 함성을 외칠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신발을 벗고 요단의 강물에 발을 담글 때 요단강이 갈라졌씁니다. 가나의 혼인 집 하인들이 말씀에 복종하여 물을 떠서 항아리에 붓고 宴會場에게 갖다 줄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의 복종이 없이 이루어진 기적은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믿음이 자라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려면 복종해야 합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服從과 順從
그런데 복종과 순종은 같은 말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존 비비어는 순종과 복종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순종이 權威에 대한 행동의 문제라면 복종은 권위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다' 복종은 권위에 대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명령을 수행하는 행동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위에 대하여 순종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정면으로 충돌될 때 우리는 그 권위에 대하여 순종할 수 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죄를 지으라고 명하면 우리는 순종할 책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우리는 겸손히 복종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 주어짐을 前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종은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조건이 없지만 순종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금신상에 절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기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던짐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에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예우를 갖추고 느브갓네살 왕을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종입니다. 그러나 순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기에 복종하는 태도는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권위에 다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에 대하여서는 복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가?
복종이 이렇게 중요하고 복종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복종해야 할까요?
첫째로, 항상 복종해야 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상식으로 이해가 되고 복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에만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난 가운데서도, 역경 가운데서도,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에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며 복종해야 합니다. 내게 유익이 되고 좋은 일이 생길 때 복종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는 사람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복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한결같이 순종하고 복종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특정한 때만이 아니라 항상 복종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복종해야 합니다.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12절)" 우리의 복종은 사람 앞에서의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복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코람데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만을 의식하고 보이는 곳에서만 충성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대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가림만 하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라(골3:22~23)"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이 진정한 나의 인격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앞에서 사람을 의식하며 복종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그러므로 복종해야 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복종은 율법적 복종이 아닙니다. 율법적 복종은 노예적 복종입니다. 노예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베푸어 주신 조건없는 은총과 사랑을 인하여 복종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냥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그러므로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러므로"는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항상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우리도 그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복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복종하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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