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2:14>
□ 모든 일을 怨望가 是非가 없이하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14절)" 고 말합니다. 그러면 원망과 시비는 무엇을 말합니까? 원망이란 단어는 불평을 품고 수군거리다는 뜻입니다. 원망은 투덜대는 불평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시비는 악의 있는 논쟁과 의심으로 惹起되는 다툼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만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가 아니라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우리가 부딪치는 모두 상황 속에서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하나님과 사람과 상황과 환경에 대하여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이미 유월절 어린 양이 피로 원을 받아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원망이라는 단어가 모세 오경에만 무려 21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특징은 한 마디로 원망과 시비의 연속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특징이 원망과 시비었듯이 사실 우리의 삶에도 원망과 시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생활이 어려워지고 실패를 거듭하게 되면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나면 너무나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처하여 있는 상황을 원망하며 살아갑니다.
□ 원망과 시비는 언제 생기는가?
① 비교를 통해 원망이 생긴다.
성경을 보면 원망과 시비는 비교로부터 옵니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들이 두 지도자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하였던 이유는 자신들도 한 지파의 족장들로 존중을 받고 지도자로서 권위가 있는데 모세와 아론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두 지도자와 비교하면서 불평과 원망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정탐군의 보고를 받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토록 하나님과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하였는지 아십니까? 자신들을 가나안 땅의 사람들과 비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며 그들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며 자신들을 가나안 땅의 사람들과 비교하였기 때문입니다(민 13:31~33). 그러므로 비교할 때 원망이 생깁니다. 인생을 살면서 비교하지 마십시오.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형통한 자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내 가정을 다른 사람의 가정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내 자녀를 다른 사람의 자녀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② 과거지향적일 때 원망이 생깁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였는데 원망하면서 그들이 가장 많이 내뱉었던 말이 무엇입니까? 차라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신광야에서도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할 때마다 과거 애굽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과거를 생각하며 오늘을 원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할 때 보면 한결같이 과거지향적입니다. 과거지향적이라는 것은 곧 내일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고 꿈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누가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살아갑니까? 과거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꿈은 없고 자기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사실 꿈이 분명한 사람은 원망할 시간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원망과 불평이 우리 안에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왜 우리는 원망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가?
① 원망은 죄이고 마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망과 불평은 죄입니다. 그리고 마귀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은 동방의 의인이라 불릴 정도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에 대하여 어렇게 칭찬하십니다(욥1:8). 그러나 사단이 이렇게 말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많은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거두시면 분명히 욥도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욥이 고난을 당합니다. 사단이 노린 것은 바로 욥의 입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나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원망은 마귀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원망을 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인과 간음 도적질은 죄로 생각하지만 원망은 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불평과 원망이 생길 때마다 바울처럼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예수의 이름으로 원망과 시비를 몰아내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이 들으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의 말을 쏟아 놓았을 때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들으신 말씀대로 심판하셨습니다(민 14:28). 왜 하나님은 불평과 원망을 이렇게 생존의 문제로 심각하게 다루시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평과 원망을 악한 것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자들을 '나를 원망하는 악한 회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평과 원망을 악한 것으로 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불평과 원망을 악한 것으로 보실까요? 그것은 불평과 원망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출 16:8). 하나님은 불평과 원망을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간주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蔑視로 여기십니다(민 14:11). 그러므로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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