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12~15>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服從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救援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所願을 두고 行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怨望과 是非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欠이 없고 純全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 너희 구원을 이루라
가끔 차를 타고가다 보면 짓다 만 건축물들을 보게 됩니다. 周邊은 잡초로 茂盛하고 앙상한 철근만 드러낸채 서 있는 건축물들을 보노라면 안타까움을 넘어 凶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設計의 圖面에 따라 시작된 建築이 완공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듯이 우리의 구원도 중단됨이 없이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태어난 아이가 長成한 사람이 되기까지 자라야 하듯이 우리의 구원도 자라야 합니다.그래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정말 당신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였다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5: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얻을 것이요'가 아니라 '얻었고' 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워을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이미 받은 구원을 생활 속에서 계속하여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이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이기에 구원을 받은 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長成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성숙을 계속하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과거의 종교가 아닙니다. 과거의 은혜만을 기억하고 감상에 빠져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교는 미래만을 기다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미래에 어떻게 해 주시겠지 하면서 막연히 미래를 기다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오늘의 하나님이십니다.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오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은혜로 받은 구원을 오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 가야하며, 오늘의 삶 속에서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명령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것은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오늘 나의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씀과 애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고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구원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러 가야 합니다. 이것은 嚴威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안에 있는 구원을 나의 몸 밖으로 끄집어내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라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타내 보여야 할 구원은 무엇일까요? 아니 어떻게 사는 것이 은혜로 받은 구원을 나타내 보이는 삶이 될까요? 그것은 흠이 없고 순전하여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빛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15절). 그러면 흠이 없고 순전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여기 흠이 없다는 것은 나무랄 것이 없는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의 사람들로 부터 비난을 받거나 트집잡힐 것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수전하다'는 말은 혼합되지 않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이것 저것을 섞어서 내어 놓지 않습니다. 이중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흠 없고 순전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세상 가운데서 빛들로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신앙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우리가 빛을 발해야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빛을 발하려하지 세상 가운데서는 빛을 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어그리지고 거스르는 세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빛을 발하며 살아야 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사을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5절). '어그러지고' 라는 말은 제자리를 벗어나 틀어진 것을 말합니다.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탈된 것, 그래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거스리는 세대하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거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의 자리에서 많이 벗어나 굽어지고 뒤틀리고 꼬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입니다.
동성애가 正當化되고 있습니다. 집단으로 파트너를 바꾸어 성행위를 하는 집단 스와핑이 경찰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행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스승과 상사의 권위가 무시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미신과 우상숭배가 판을 치는 그런 세상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可憎스러운 그런 일들이 이 땅 가운데서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개독교라 호칭하며 이 땅에서 기도교를 撲滅하겠다며 거품을 물고 기도교를 공격하는 반기독교 안티 싸이트가 60여개나 됩니다. 그들은 밥만 먹으면 기독교를 공격하는 일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정말 우리는 이렇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믿음이 없고 悖逆한 세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어그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우데서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뒤틀리고 굽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우리도 과거에는 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속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어두움 가운데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빛되신 주님을 모신 이후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여러분이 머무는 그 모든 삶의 현장에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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