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3:4~5>
□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
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종교들 중에 가장 기쁨을 강조하고 기쁨을 표현하는 종교는 어떤 종교일까요?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불교는 상가 집과 같고, 유교는 제사 집과 같고, 기독교는 잔치 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희락, 기쁨, 기뻐하라! 기쁨과 단련된 단어가 191번 나옵니다. 신약 성경만 보더라도 "기뻐하라"는 동사형 카이레인이 72번 나오고, 명사형 "기쁨" 카라가 60번 정도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베푸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베푸심으로 시작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시작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장 큰 기쁨인 경혼잔치와 같기 때문입니다. 잔치는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잔치에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잔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을 "어린양의 혼인찬치"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 희락의 종교입니다. 결코 우울한 종교가 아닙니다. 고행을 하면서 마음을 비워내는 명상의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행하는 역동적인 종교이며 삶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며 기독교는 그 계시에 기쁨으로 반응하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 기쁨은 표현되어야 합니다.
기쁨이라는 정서는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슬픔은 묻어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슬픔은 삭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쁨은 묻어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다 알 수 있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노래도 부를 수 있어야 노래이듯이 기쁨도 표현되어야 온전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기쁨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속으로는 기쁘지만 밖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니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진지함이 없는 輕妄스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표현해야 할까요?
□ 예배로 당신의 기쁨을 표현하라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가장 먼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이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4절a). 왜 이 시인이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른다는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배는 언제나 대상이 있습니다. 대상이 없는 예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며 이 시인에게 있어 예배의 대상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나의 기쁨의 하나님"이 십니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나의 기쁨이 되시고 또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기쁨 중의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NIV 성경은 "my joy and delight"로 표현했습니다. 이 시인에게 있어 예배의 대상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이 셨습니다.
그러면 왜 시인은 하나님을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으로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나의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최고의 기쁨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바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는 어떤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기쁨의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단지 주님의 고난이나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省察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구원받은 자들의 축제입니다.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자들의 축제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약의 안식일이 아닌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에 모여 주님께 예배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기쁨의 근원이 되신 주님께 우리의 기쁨을 표현하여야 합니다.
□ 찬양으로 기쁨을 표현하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우리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찬양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竪琴(harp)으로 주님을 찬양하리이다"(4절b). 이 시인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수금으로 주님을 찬양하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기쁨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가장 최상의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을 지으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사 43:21)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통하여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쁨의 함성을 지르면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시 89:15) 때로는 박수를 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시 47:1) 때로는 박수를 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시 47:1) 때로는 다윗 왕처럼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삼하 6:14)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찬송하므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송중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야 합니다.(시 100:4절b) 궁정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나의 기쁨의 하나님께서 좌정하여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나아갑니까? 찬송함으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까? 예배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찬양으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찬양을 자주 많이 부르다 보니 우리가 찬양을 드릴 때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가장 많은 찬양을 드렸던 다윗은 오늘 우리가 드릴는 찬양이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노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 소, 뿔과 굽이 있는 황소는 구약의 제물 중에 최고의 제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드리는 찬양은 구약 시대에 드려졌던 최고의 제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인생의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묶임을 당하면 당할수록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하십시오. 목이 매이도록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지금 내게 없는 것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악한 영은 떠나가고 성령께서 찬양을 드리는 그 현장 가운데 강력하게 임재하실 것입니다. 닫힌 것들이 열리고 묶인 것들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듯 하나님의 영광이 보좌를 향하여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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