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7:7~8>
□ 사라의 웃음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 오사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장막 문 뒤에 있던 사라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나이도 많고 생리도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느냐"며 속으로 웃었습니다.(창18:11~12) 왜 사라가 웃었습니까?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사라와 같은 웃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너무나 다르고 내가 처한 현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비웃음
또 성경에는 하나님의 비웃음도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음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로다"(시2:4) 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비웃으십니까?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까? 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필요없다."며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시2:~3)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시며 비웃으셨습니다. 아니, 기가 막혀 웃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인생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어이 없어 웃으십니다.
□ 바리새인의 웃음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16:14) 왜 바리새인들이 비웃었을까요? "이 모든 것을 듣고"입니다. "이 모든 것"은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비웃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코웃음을 쳤을까요?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돈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돈을 좋아했다는 말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중하게 여기고 섬겼음을 말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앞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눅16:1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는 재물을 더 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 대적의 기쁨
"나의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는 말은 지금 자신의 대적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나의 대적이 기뻐하였을까요? 내가 엎드려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두운데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엎드러졌다." "내가 어두운데 앉아 있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犯罪( 법규를 어기고 저지른 잘못)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公義(공평하고 의로운 도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割禮를 받은 언약의 백성들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성전은 불에 탔고 성벽은 무너져 내렸고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恥辱(수치와 모욕)적인 사건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웃음을 당할지라도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십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의 이름이 損傷(①물체가 깨지거나 상함. ②병이 들거나 다침.③품질이 변하여 나빠짐.④명예나 체면, 가치 따위가 떨어짐.)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懲戒하십니다. 왜냐하면 징계를 통해서라도 그들을 깨닫게 하고 그들을 죄와 죽음의 길에서 건져 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 사탄의 기쁨, 비웃음
그런데 이 대적의 기쁨은 우리의 영적 원수인 사탄의 기쁨을 의미합니다. 사탄과 그의 졸개인 귀신들은 우리가 넘어지고 엎드러질 때마다 깔깔대며 웃어댑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사탄은 기뻐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상처를 받고 무저질 때 사탄을 깔깔대며 웃어 웃어댑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나아갈때,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하여 도전하여 나아갈 때 우리를 비웃습니다. 바벨론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자 할 때 산발랏이 비웃었습니다.(느4:1) 그리고 암몬 사람 도비아도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느4:3절b)하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왜 산발랏이 비웃었습니까? 왜 도비아야 비웃었습니까? 성전건축에 대한 의욕을 꺾고 성전건축에 대한 열심을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좌절과 절망에 빠져 다시 성전건축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보면 산발랏의 비웃음은 오늘 우리를 향한 사탄의비웃음을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하여 믿음으로 도전하여 나아갈 때 비웃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나아가고자 할 때 산발랏과 같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치게 합니다.
□ 나의 대적이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사탄의 웃음과 비웃음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대적으로 하여금(누구를 시키어)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8절a)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징계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탄의 기쁨과 비웃음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 오뚜기 신앙으로 다시 일어서라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8절a) 오뚜기 신앙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미가는 외칩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해서 너희가 깔깔대며 웃어대며 비웃고 있지만 즐거워하지 마라, 코웃음 치지 마라 나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다 넘어진 자들이었습니다.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넘어진 자리에서 오뚜기 신앙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다윗도 실패하고 넘어졌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넘어졌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를 딛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면 누가 오뚜기 신앙으로 사탄의 웃음과 비웃음을 이겨내며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7절)입니다. 왜 미가 선지자는 "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말합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 인생의 해답이 되시고 나를 건져 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책임져 주실 수 있는 분도 주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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