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부활의 가장 큰 기쁨<제27권 14호/2015.04.05>

꿈 꾸는 소년 2015. 4. 6. 07:50

 <벧전 1:3~4>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다른 것이나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특정의 대상을 집어서 가리키는 말.) 우리 예수님이 2천 년 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인류 역사에 이 보다 더 큰 기쁨의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일까요?

 

 □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장 큰 기쁨인가?

 

 첫째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죽음은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지고 모든 인간들을 지배해왔습니다. 아담의 후손을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 떨며 그 죽음의 권세 앞에 백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 세상에 죽음처럼 평등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처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불로초를 구했던 진시활제도 죽었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면 큰소리치던 나폴에옹도 죽었습니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울었다는 알렉산더 대제도 죽었습니다. 英雄(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豪傑(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고 기개와 풍모가 있는 사람.)

도, 絶世美人(세상에 견불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絶代佳人) 도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無所不爲(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의 권세를 가지고 인간 세계를 號令(부하나 동물 따위를 지휘하여 명령함. 또는 그 명령.)했던 죽음의 권세가 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사망의 권세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멸하셨기 대문입니다.(하2:14절b~15)

 그러므로 더 이상 죽음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법칙 아래 있지 않습니다. 이제 죽음이란 우리에게 영광스런 부활을 위재 존재하는 것뿐이고 그 영광을 맛보기 위한 수준에 不過(ⓛ 그 수량에 지나지 아니한 상태이다. ② 그 수준을 넘지 못한 상태이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그러므로 이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주기 위해 살고 죽음으로 달려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부활을 위해 살고 부활의 영생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부활의 생명으로 거둡났기 때문이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둡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3절). 예수님이 부활하사 그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다시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남을 말합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변화되고 성숙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고후5:17)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의 생명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생명이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나에게 물려준 생명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는 타락한 죄성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은 죄와는 무관한 생명이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나는 것은 죄와는 무관하고 죽음을 이긴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거듭난 것을 말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다면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는 지금 두 개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옛 생명이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영원한 새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산 소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산 소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3절b) 산 소망이란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living hope'입니다. 산 소망이 있다는 것은 죽은 소망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죽은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죽음 소망이란 나의 죽음과 함께 끝나버리는 소망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헛되고 헛되도다"라며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은 이 세상의 인기와 명예과 부와 권력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죽은 소망은 시간이 지나면 더렵혀지고 낡아지고 없어집니다. 잠깐의 기쁨만을 안겨줄 뿐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산 소망이란 살아 있는 소망을 말합니다. 소망이 살아 있다는 말은 그 소망 안에 생명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어떤 고난과 어떤 逆境(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산 소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遺業업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것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절) 그러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은 무엇을 말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삶을 말합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여 둔 천국의 영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丹粧한 것 같더라"(계21:2)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과 같습니다. 또 천국은 우리 주님이 친히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눈물과 애통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질병의 고통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계21:3절b~4절) 또 계시록 22장을 보면 천국은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다시 밤이 없으며 구원받는 백성들이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해 놓은 천국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산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 산 소망을 가진 자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산 소망을 가진 자는 환난과 핍박도 이겨냅니다. 이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베드로가 이 편지를 썼습니까? 당시 로마 황제로 인하여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AD 64년 7월 로마시내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네로 황제를 백성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지금의 터키 지방인 소아시아로 건너가 바위 굴 속에 피신했습니다. 이렇게 동굴 속에서 나갈지 모를 암담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입니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졌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