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3:9 ~ 11>
□ 바울의 관심과 인생의 재해석
바울의 첫번째 관심은 예수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관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었습니다(8~9). 바울은 예수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모근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만났는데 예전처럼 동일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면 왜 나는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이유와 목적도 재해석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우선 순위도 재해석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예수 안에서 내가 가졌던 꿈과 비전도 다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가정도 자녀들에 대한 생각도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죽음까지도 다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재해석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만 발견될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만이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새로운 발견도 인생의 재해석도 주님과 내가 연합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모든 편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을 165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이렇게 그리스도를 만나면 주 안에서 우리의 인생은 재해석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진정한 관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었습니다. "오 주님 나는 온전히 당신 안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 안에서 발견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그러면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9절)" 하나님의 의는 嚴密한 의미에서 바울 자신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에게 발견되어진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는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2:16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를 의롭다함을 얻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한번도 죄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看做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아들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한번도 죄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느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복만 받으려고 하지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 속한 의를 갖는 것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의롭다함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가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삶이란?
첫째로, 부활의 權能을 아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 바울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이 권능을 알기를 원하였습니다(10절). 바울이 알고자 하였던 것은 그 부활의 지식이 아니라 그 부활의 권능이었습니다. 바울은 부활에 관하여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선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자신의 몸이 부활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부활에 대하여 알기 보다 부활의 권능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알기를 원한다는 것은 체험적 지식을 말합니다. 부활에 관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여 알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매일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여 알기를 원했습니다(11절). 매일 매일 자신의 삶 속에서 부활의 권능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여 알기를 원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매일 매일 자신이 삶 속에서 부활의 권능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때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의 막강한 권력이 그를 結縛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곁을 떠나갔습니다. 언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掩襲해 오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내가 삶과 죽음 이 두 사이에 끼어 있으나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빌1:23).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노라고 선포하였습니다(롬 8:38~39). 이것이 바로 바울이 경험하였던 부활의 권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께서 오늘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롬 8:11).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권능을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부활의 권능을 힘입어 살아간다면 그 어떤 인생의 파도도 당신을 삼키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苦難에 參與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삶을 사는 것은 고난에 참여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10절). 그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예수님과 하나되어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서 당하게 되는 고난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은 은총이요, 特權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난에 참여하므로 부활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의 아침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때 부활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권능을 참으로 알기 원한다면 먼저 고난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날마다 부활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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