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한우신]일하는 기쁨, 쉬는 행복
한우신 소비자경제부 기자
오랫동안 실직 상태가 이어지며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까. 행사장에서 만난 구직자 중에는 불만이 가득한 이도 적잖았다. 5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안내책자에 나온 기업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여기는 지방에 있는 곳인데 왜 서울에서 개최하는 박람회에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이곳은 미화 업체인데 내가 어찌 그런 일을 하는지”라며 불평했다. 딱 입맛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 쉽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직의 고통이려니 이해할 만도 했다.
이틀 동안 100명 넘는 구직 상담자가 몰린 부스의 회사 관계자는 “상담 받으러 와서 자신의 과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이 꽤 있다”고 전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회사에서 어느 위치까지 올라갔는지, 얼마의 연봉을 받았는지 등을 얘기하고는 정작 상담하는 회사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성실한 자세만 있으면 일을 잘할 수 있는 회사인데, 화려한 과거만 늘어놓는 구직자를 만나면 난감하다”고 했다. 내가 일자리가 없는 것을 다른 세대의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정부가 청년 취업에 신경을 쓰다 보니 나 같은 중년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고 불만을 얘기했다.
물론 행사장을 찾은 대다수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는 이들이었다. 정수기 렌털 업체의 부스에서 상담을 받은 28세 청년에게 ‘주로 30, 40대 여자들이 하는 일인데 잘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꿈을 이루는 데 꼭 직선으로만 가란 법은 없지 않느냐.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꿈을 향해 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구직활동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올해 초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한 달 전 다치는 바람에 관둬야 했다. 그래도 그는 일하는 기쁨을 상상하며 웃었다.
명문대 석사를 마치고 정부 부처 공무원으로 일한 60세 남성은 퇴직한 지 3개월이 됐다고 했다. 30년 넘게 일했으면 쉬고 싶을 법도 한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식들은 이제 좀 쉬라고 하지만 앞으로 30, 40년은 더 살 텐데 기약 없이 쉬면 너무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힘들게 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휴식을 원한다.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 역시 그런 생각을 가졌을 텐데 왜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할까.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쉬면 행복하죠. 그런데 일하면서 쉬어야 행복해요.” 많은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하고 싶은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었다.
쉬는 행복은 일하는 기쁨 위에서 누릴 수 있다. 행사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일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길 바란다. 화려했던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길 바란다. 불만 가득했던 사람 그리고 밝게 웃던 이들 모두 함께 일하는 기쁨과 더불어 쉬는 행복이라는 보너스를 누리게 되길.
한우신 소비자경제부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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