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함인희]연애도 스펙이라는데
대학생들 사이에선 연애할 상대의 학벌, 집안 배경이 최고 관심 대상 연애까지 실용적으로 접근하려는 세태… 당황스럽고 씁쓸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데 요즘은 연애도 스펙처럼 관리의 대상이 되어 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연애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에겐 정작 봄이 왔건만 봄은 여전히 멀리 있는 줄만 알았는데, 자신들만의 실용적 연애 관행을 만드는 중이라니 한편으론 당황스럽고 다른 한편으론 불편함이 고개를 든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선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면 상대의 학벌과 외모 그리고 집안 배경에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집중한단다. 물론 학벌 외모 집안 배경은 예전에도 무시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인의 조건이 화려할수록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화려한 조건을 갖춘 애인 수가 많을수록(?) 시샘의 대상이 된다는 데야 그저 유구무언일밖에. 상대의 조건이 화제에 오르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흥미진진한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 연애의 주인공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고백하거나, 포만감과 공허감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 방황하는 불안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급격히 싸늘하게 식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친구의 감정 상태나 상대의 진정성 따위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는 것이다. 친한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하면 함께 가슴 졸이고 함께 울고 웃던 세대로선 여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연애도 스펙이 되어가는 배경엔 사회구조적 영향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신분 질서가 공고한 곳에서 조혼(早婚) 풍습이 발달했던 이유는, 사랑이 신분 질서를 교란하는 주범이었기 때문이란 해석은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젠 첫눈에 반하거나 무조건 사랑에 빠지거나, 세속적 요소를 초월하여 이상적 상황을 추구하는 ‘낭만적 사랑’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나 멜로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지도 모를 일이다.
고도 성장기 계층 상승 이동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엔 계층을 초월하여 연애결혼에 성공하는 커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1980년대 결혼관 조사에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는 커플이 40%에 이르곤 했었는데, 이젠 부모의 도움 없이는 결혼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부모 상견례 후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는 것이 순서가 되고 있다 한다.
연애가 스펙이 된 시대, 예전과 달라진 풍경은 또 있다. 예전엔 여성들 편에서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며 “주판알을 튕겼다”면, 요즘은 남성들 쪽에서도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철저히 계산을 한다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 남성을 인터뷰한 자리에서 “결혼이 로또였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바람에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다.
계층구조가 공고해지고 양극화가 더욱 확대되면서, 결혼에 담긴 정서 공동체적 요소보다 경제 및 상속 공동체로서의 가족 기능이 전면으로 부상함에 따라, 연애의 실용성과 현실성이 강화되고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덧붙여 친밀한 사이에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희생하고 헌신하며 양보하고 돌봐주는 인간관계보다는, 자신이 원할 때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네트워크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특성도 연애의 스펙화에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기준을 잣대로 신세대의 연애를 폄하하거나 곡해하고 싶진 않지만, 언제든 원하면 컴퓨터 키보드의 딜리트(delete) 키를 누르듯 인간관계도 ‘쿨하게’ 유지하길 원하는 신세대를 보며, 행여 잃어버려선 안 될 것을 쉽게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어리석은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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