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15,18>
□ 가정을 지켜라
가정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고 세우신 곳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친히 만든 공동체는 교회와 가정 두 개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회사를 설립한 적도, 학교를 세운 적도, 국가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와 가정 두 개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교회와 가정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와 가정을 공급합니다. 사탄의 목표는 언제나 교회와 가정입니다. 사탄의 공격 목표는 돈이 아닙니다. 상처가 아닙니다. 낮은 자존감이 아닙니다. 질병이 아닙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출세가 아닙니다. 바로 그 돈으로 가정을 무너뜨리고 그 상처로 가정을 무너뜨리고, 그 낮은 자존감으로 가정을 무너뜨리고 출세와 성공으로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의 가정을 공격합니다. 이 땅의 작은 에덴동산이 되어야 할 가정이 왜 지옥과 같은 비참한 가정이 되었을까요? 아름답고 행복할 가정이 왜 한숨과 눈물의 골짜기가 되었을까요? 가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만 이루었지 가정을 지키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결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은 가정이 되라
그러면 어떻게 가정을 지켜야 할까요? 아니 우리 가정을 무너뜨리기 위한 사탄의 공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이뜰림을 받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지으신 다음 그 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을 어떻게 에덴동산에 두었습니까? "이끌어" 두셨습니다.(15절) 하나님은 아담을 지은 다음 짐승을 끌어오듯이 끌어와 에덴동산에 두지 않았습니다. 또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신 다음에도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창2:22)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이루기 전에 먼저 아담을 에덴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강압적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나 한 몸을 이루고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만날 수 없었고 한 가정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절b)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이끌어 에덴동산에서 두셨듯이 오늘 우리의 가정도 성령의 이끌림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이렇게 성령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으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이루어진 만남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룬 다음에도 성령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늘 깨어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의 공격으로 부터 가정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순종하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 돈과 출세와 성공, 세상의 쾌락에만 이끌리어 인생을 살게 되면 반드시 그 가정은 사탄의 공격을 받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내 가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 작은 여우를 잡으라
또 우리가 가정을 지키려면 가정을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아가서에 보면 가정을 허무는 여우가 나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아2:15절a) 이 말은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한 말입니다. 당신과 나와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당신과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포도원을 허무는 저 작은 여우들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 나오는 포도원은 무엇을 말합니까? 아가서에서 말하는 포도원은 교회 혹은 가정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의 교회와 가정을 허무는 작은 여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작은 여우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포도원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포도원을 허뭅니까? 폭풍이나 지진을 통해서 포도원을 허무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여우처럼 슬며시 들어와 뿌리를 캐내어 말라 비틀어지게 하고 줄기를 갉아먹고 꽃을 떨어뜨리는 일은 통하여 포도원을 망가뜨립니다. 그러면 언제 이 작은 여우가 주로 활동합니까?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아2:15절b)이 여우가 가장 힘차게 활동하는 시기가 바로 포도원의 꽃이 피는 시기입니다. 부부생활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가정의 행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은혜스러울 때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없다고 은혜롭고 평안하다고 기도를 쉬면 안 됩니다. 自慢해서는 안 됩니다.
□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는?
첫째, 외로움과 고독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는 바로 외로움과 고독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를 돕는 配匹로 지으셨습니다.(창2:8) 하나님은 외로움과 고독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가정을 허락하시고 가족들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시68:6절a) 하나님은 고독을 이겨내게 하려고 가족과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고독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이 가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작은 여우를 잡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대화입니다. 가정의 예배입니다. 가족들 간에 영적인 소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을 통하여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야 합니다.
둘째, 열등감
가정이라는 포도원을 허무는 또 하나의 작은 여우는 바로 열등감입니다. 술람미 여인에게는 남보다 많은 열등감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에 있는 백오과 같은 피부를 가진 여인들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시골 촌뜨기 여인이었습니다. 피부도 검고 가진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여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그 모든 열등감을 이겨내었습니다. 그러면 술람미 여인은 어떻게 이 열등감을 극복했나요? 사랑하는 자의 사랑의 고백과 관심으로 이 열등감을 이겨내었습니다. 당대의 최고의 왕이요 가장 지혜로운 왕인 솔로몬 왕이 여인을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며 자신의 외모를 평가해주었기 때문입니다.(아1:5) 아가서를 보면 술람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 왕의 사랑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인 중의 어여쁜 자야"(1:8절a) "바로의 兵車의 駿馬"(1:9절b)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그런데 이 술람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은 곧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사랑이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고백을 통해서 내 안에 열등감을 이겨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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