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모든 사람과 더불어 和睦하라 2016.3. 김은호 목사

꿈 꾸는 소년 2016. 7. 13. 05:16

<롬 12:18>

 

 □ 분노가 지배하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화목보다 분노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和解를 말하고 화목을 말하면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看做됩니다. 화해를 말하고 화목을 말하는 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분노를 表出하고 보복을 말하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그 모임을 지배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꼭 가인의 후손 라멕이 지배하던 세상과 같습니다. 창4장을 보면 가인후 후손 라멕이 나옵니다. 그런데 라멕은 자기의 잘못을 범하고도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죽였습니다.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殺害한 것입니다.(창4:23절b) 그런데 라멕은 자신의 이러한 복수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당화하고 영웅시하였습니다.사람들은 라멕처럼 자신이 분노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당화하고 영웅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화해하고 화목하는 것보다 분을 내고 분열을 일삼고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에 대하여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화목보다 분노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8절)

 

 1. 화목해야 할 대상은?

 모든 사람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처럼 近似하고 좋은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화목해야 할 대상 중에는 정말 화목하기에 껄끄럽고 어려운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화목해야 할 모든 사람 가운데 迫害하는 자(14절), 원수(19절)가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내가 화목해야 할 사람 중에는 나를 박해하며 끊임없이 나를 미워하며 대적하는 원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모함하고 악의적인 말로 상처를 입힌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도 '더불어 화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留保 조항 "할 수 있거든"    

 하지만 화목은 더불어 해야 하므로 "할 수 있거든"이라는 유보조항을 두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더불어 화목해야 하겠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화목을 위해 노력하지만, 種種 우리의 노력만을 가지고는 화목이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 왜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화목하게 하는 職分을  주셨기 때문입니다.(고후5:18)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던 직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예수는 믿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교회이 어떤 직분보다 더 우선하고 중요한 직분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잘 勘當해야 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해야 합니다.

 

 □ 화목의 방법

 

 첫째,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는 삶을 살려면 나를 박해하는 자, 나를 미워하는 자까지라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心中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전10:20절a)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자신을 희롱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다."(눅23:34)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 역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여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기도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고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권리만을 주셨지, 저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저주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행하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圖謀하라"(17절)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악을 악으로 갚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사는 죽이려는 아람의 군대가 사마리아 성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것입니다. 적군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왕은 당장에 저들을 쳐 죽이고자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대답하되 치지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왕하6:22)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왕을 그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푼 다음 그들로 먹고 마시게 한 다음 아람 나라로, 가정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인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 뭡니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내 안에 있는 복수하고 싶은 본능과의 싸움입니다. 아니 보이지 않는 미움의 영과의 싸움입니다. 형제와 화목하는 것은 이렇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셋째,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瞋努하심에 맡기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19절a)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방법은 주께 원수를 맡기는 것입니다. 왜 원수를 내가 친히 갚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까? 하나님만이 가장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수를 친히 갚으려 하다가 내가 죄를 짓게 되고 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급해하지 말고 원수를 축복하며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방법은 주께 원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