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제28권 25호 2016.6.19. 김은호 목사

꿈 꾸는 소년 2016. 6. 27. 11:56

<시 39:7>

 

 □ 기독교는 虛無主義?

 

 솔로몬 왕은 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차지 아니하도다."(전1:8절b)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솔로몬의 인생 고백을 보면 솔로몬이 경험적 허무주의자로 보입니다. 전도서 1장에서 3장까지만을 보면 솔로몬이 허무주의자로 보입니다. 이것 때문에 기독교를 허무주의의 極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서 마지막 장을 보면 솔로몬은 신앙으로 허무주의를 이겨내었습니다. 솔로몬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합니다.(전12:13~14)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명령들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허무주의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이겨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역시 인생의 허무를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인생의 길이가 한 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짦은 인생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든든히 선 때도 모두가 허사 뿐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인생을 그림자로 묘사하였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무상을, 인생의 허무를 알았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다윗 역시 허무주위자 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생의 허무를 이겨내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인생의 허무를 이겨내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의 인생의 허무와 무상을 어떻게 이겨내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 나의 소망을 주께 있나이다.

 

 다윗은 인생의 무상, 허무를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나니까, 이렇게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나니까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눈길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재물과 권력과 세상이 즐거움을 향하던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새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이라는 인생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누렸던 그 어떤 부귀와 영화도 그 어떤 인기와 명예도 그 어떤 쾌락도 내 인생의 소망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응답을 받고 원하는 대로 성취가 되는 것만이 은혜가 아닙니다. 남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이 은혜가 아닙니다. 진짜 은혜는 깨닫는 것입니다.  

 

 □ 왜 소망이 중요한가?

 

 첫째, 소망이 곧 생명이다.

 소망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소망을 영혼의 닻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히6:19) 바다의 배에 닻이 없으면 그 배는 표류하다가 파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닻은 배의 생명입니다. 이 처럼 소망은 인생의 배를 안전하게 고정시키는 생명의 닻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포기하고 자살을 선택할까요? 소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자는 특별히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그 임종의 순간에도 임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잠14:32) 소망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땅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될 소망 가운데 눈을 감습니다.

 

 둘째, 소망이 인내를 가져다준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3) 믿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수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에는 반드시 인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있는 자는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소망을 "에스페라(esperar)"라고 합니다. 그 뜻은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게 기다림이 없다면 인내가 없다면 당신 안에 있는 그것은 소망이 아니라 야망인 것입니다. 야망을 오래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망을 기다립니다. 소망이 있어야 오늘을 기다릴 수 있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소망을 가진 자는 낙심치 않는다.

 이 시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포로로 끌려갔던 고라 자손 중의 한 사람이 나라를 잃고 성전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시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때문에 낙심되고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방임으로 인하여 낙심되고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한송하리로다"(시43:5) 낙심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소망임을 믿는 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 소망의 하나님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롬15:13) 소망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자포자기 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징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렘29:11) 지금의 포로 생황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자포자기 하지 말고 미래와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썩어질 재물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연약한 인생도, 심지어는 나의 자식도 나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14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