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나의 연약하을 알게 하소서 제28권 24호 2016.6.12.

꿈 꾸는 소년 2016. 6. 24. 09:03

<시 39:4~6>

 

 □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대적들의 비난과 핍박 그리고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 중에서도 사람에 대하여 침묵하던 다윗이 드디어 하나님을 향하여 입술을 열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기도했던 그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합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4절) 다윗은 원수로 인하여 마음에 근심이 더하여지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나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자를 제거하여 주십시오"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나의 軟弱함을 알게 하소서"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은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물질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고 출세와 성공을 구하는데 다윗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는 말은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왜 이 기도가 중요합니까? 자기의 연약함을 아는 자라야 교만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아는 자라야 虛勢를 부리지 않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아는 자라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한 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종말과 인생의 짧음

 

 그런데 다윗은 무엇을 통해 연약함을 알기를 원했습니까? 자신의 종말과 인생의 짧음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年限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4절) 여기서 종말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말하며 연한 자신의 남은 수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이 사실과 내 인생의 남은 수명이 짧다는 것을 알게 하사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종말과 인생의 남은 수명을 알게 해 달라"는 이 기도는 알게만 해 달라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내 인생의 남은 수명이 얼마인지를 늘 하나님께 묻고 意識하며 살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물었습니다. 내 인생의 끝은 언제 입니까?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때가 언제 입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내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인생의 날은 얼마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꿈은 언제 입니까?" "내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인생의 날은 얼마 입니까?" 그래야 우리의 인생은 지혜롭게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한 뼘 길이의 인생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다윗은 이제 자신이 종말의 연한의 어떠함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인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5절a)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한 뼘 길리 만큼의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길이를 잴 때 가장 기본 단위가 바로 한 뼘이었습니다. 한 뼘은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의 넓이를 말합니다. 대략 7.5cm 밖에 안되는 길이를 말합니다. '손가락 넷'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한 뼘 길이는 유대인들이 가장 짧다는 표현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 인생이 한 뼘 길이 밖에 안되는 짧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장수를 말하고 오래 살았다고 말하고 호상이라고 말해도 지나고 보면 우리 인생은 한 뼘 길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의 날들은 없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 虛事(헛일) 뿐인 인생

 

 우리의 일생이 한 뼘 길이만큼 짧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 같기 때문에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모두가 허사뿐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5절b) 여기서 "든든히 서 있는 때"는 인생의 최고의 순간을 말합니다.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를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최고의 순간이 있습니다. 최고로 건강한 때가 있고 최고로 부요하게 살 때가 있고 최고로 성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순간도 모두가 허사뿜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벨'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입김' '호흡'을 말합니다. 입김의 특징은 금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 아침 숨을 내쉬면 입김이 나오는데 한순간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한순간의 입김처럼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그림자와 같은 인생

 

 다윗은 인생을 그림자로 묘사하였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니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6절) 다윗은 인생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내 인생뿐만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소유도 다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한나라의 왕으로서의 자신이 가지고 누렸던 권세와 명예도, 부귀와 영화도, 지혜와 지식도, 힘과 재능도, 한낮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닙니다. 그림자는 실상이 아니라 허상입니다. 여러분 그림자 잘 아시잖아요. 어렸을 때 그림자 놀이 하지 않았어요. 그림자가 어디 잡히던가요? 잡혔다가도 달아나지 않습니까?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잡았으면 또 달아나 버리는 것이 그림자입니다. 이 세상의 명예와 권세사 바로 그림자입니다. 부귀와 영화가 바로 그림자입니다. 지혜와 지식이 바로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의 자식도 그림자입니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습니다. 아니 잡혔다가도 달아나고 맙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디든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맙니다. 특히 재물이라는 그림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6절 하반절에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헛된 일에 소란스러움을 피우면서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행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돈이라는 그림자를 찾아다닙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버느라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 자체가 잘못돈 것은 아닙니다. 또 돈을 모으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돈이란 우리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재물과 관련된 성경 구절이 2,300개가 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38개 중의 16개 재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돈, 재물은 우리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삶의 수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물 역시 그림자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토록 수고하여 얻은 물질이지만 내 소유가 될 수 없고 누가 그것을 취할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오륜의 모든 지체가 내 인생의 연약함을 알아 오늘 하루 감사하며 오늘 하루 사랑하며 오늘 하루 하나님만을 더욱 의지하며 겸손한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