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80:1~3>
□ 이스라엘의 목자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1절a) 시인은 하나님을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부릅니다. 이 시인은 기도를 시작하면서 왜 하니님을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목자여"라고 불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요10: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목자이시라면 그의 백성은 뭐가 될까요? 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자녀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시79:13절a, 시95:7) 왜 성경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할까요? 양은 목자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은 짐승 중에 가장 우둔하고 연약한 짐승입니다. 양은 듣는 귀는 발달했지만 방향 감각이 무디어서 우리를 떠나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양은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양은 목작의 도움이 없으면 길을 잃고 방향하다 굶어 죽든지 아니면 맹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죄의 본질
그런데 양들 가운데는 목자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려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와 그 사역을 예언하면서 죄의 본질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와 그 사역을 예언하면서 조의 본질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절a) 양이 목자의 인도를 거부하고 목자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이 바베탑을 쌓은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피조물의 인간이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주님의 도움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
또 시인은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럽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1절b) 그룹은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에 세워진 천사의 장식물을 말합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구약시대의 성막, 성전에 설명을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성막이었지만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므로 나중에 성전이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이 성막, 성전은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처소였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정결하게 몸을 씻고 정결한 짐승의 피를 들어갑니다.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은 하나님이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의 뚜껑에 정결한 피를 뿌립니다. 그러므로 언약궤에 있어 제일 중요한 부분이 바로 피가 뿌려지는 언약궤의 뚜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가 뿌려지는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라 부릅니다. 그런데 언약궤 위에는 천사를 상징함을 수호하는 천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나님이 거룩함을 수호하는 천사 사이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속하는 속죄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좌정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그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주님께 앉으신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의 내용
기도의 내용은 구원입니다. 회복입니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2졀)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3절)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7절) 당시 북이스라엘은 近東의 최강국인 아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은 전쟁을 민족과 간의 싸움 이전에 그 민족이 섬기는 신들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가 그 전쟁에서 패하면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이 싸움에서 패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앗수르에 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앗수르의 신보로 믿고 있었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는 양 떼인 우리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실 이스라엘의 목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여 계시며 언제든지 악인을 심판하시고 천군천사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을 구원하여 내실 만군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하나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하나님이신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구원하소서
그런데 어떻게 구원햐 주시기를 기도했습니까?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3절b, 7절b, 19절b)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사"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어 주시면 우리 가운데 회복이 일어나고 주께서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 가운데 비추어 주시면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얼굴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에 대한 말씀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얼굴은 하나님 을 의인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성품과 전 인격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얼굴을 드신다는 것은 놀라운 사랑과 관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주께서 그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여 드사 그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얼굴의 광채는 단순한 빛이 아닙니다. 주의 얼굴의 광채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얼굴의 광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이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있습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얼굴의 광채가 우리 가운데 비치면 어둠이 떠나갑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임합니다. 미움과 분노가 사라집니다.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병든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심령이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당신의 얼굴의 광채를 내게 비추사 나를 구원하소서.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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