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3:1~6>
□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崇拜하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嗔怒하셨고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건 中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이런 사건이 있고난 다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1절). 무슨 말입니까? 실패했지만 그래도 출애굽의 최종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安住하지 말고 廣野의 길을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事實 百姓들의 입장에서 보면 太陽이 이글거리는 광야로 나아가 苦生하는 것보다 시내산 기슭에서 陣을 치고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내산 기슭이 아무리 좋아도 너희는 이곳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올라가라! 이곳을 떠나라! 삶에 안주하지 말라!" 하나님은 지금 실패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일어나 새롭게 출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지만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갔듯이 구원받은 우리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했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새롭게 출발해야합니다.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중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주저앉아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목표를 잃어버리고 돈 버는 즐거움, 세상의 즐거움에 陶醉되어 안주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라! 삶에 안주하지 말고 지금 약속의 땅을 향하여 올라가라! 이글거리는 광야의 태양이 기다리고 있어도, 광야의 목마름이 기다리고 있어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떠남으로 내 인생의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떠나날 때 그 인생을 붙드시고 축복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주저 앉은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잠시 잠깐으 安樂을 위해 안주하지 말고 영원한 당신의 미래를 위하여 다시 일어나 새로게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으리라.
하나님은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곳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충격적인 宣言을 하십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3절a)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행거부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내가 천사들을 너희들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의 원주민을 몰아내도록 하겠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한 약속대로 그 땅에 이르게 하겠지만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저들을 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까? 그리고 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에 도중하차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제 막 새롭게 출발해보려고 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靑天霹靂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보다 더 큰 충격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안타까운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곧 '내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결혼은 하겠지만 너와 살지는 않겠다'는 말과 같은 訣別宣言은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 동행거부의 이유
하나님은 너희가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에 동행하실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3).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목이 곧은 사람과는 함께 동행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목이 곧은 것 만큼 하나님을 분노케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목이 곧은 것 만큼 하나님을 憤努케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 형상을 섬긴 것을 말합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啓示와 誡命 받고 있을 때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모세가 내려 오지를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崇拜하지 시작하였습니다.(출32;8) 왜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을까요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자기를 위해서 입니다. 왜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합니까? 자기를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목이 곧은 사람은 목에다 힘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信賴하지 않고 보이는 그 어떤 것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동행을 할 때에도 상대를 믿어주고 신뢰하지 않으면 함께 동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기 보다 財物을 더 의지하고 사람을 더 의지하고 세상의 권력을 더 의지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 사람과 함께 동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백성들의 反應
"백성이 이 峻嚴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丹粧하지 아니하니"(4절)
첫째로, 슬퍼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으 동행거부선언을 들었을 때 그들은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음이 가장 슬픈 것임을 알았습니다. 비록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過誤를 범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퍼했습니다.
둘째로, 자기 몸을 단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장신구를 떼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順從하여 장신구를 떼어내었습니다.(5~6절) 그러면 언제든지 또 다시 그러한 장신구를 가지고 금송아지와 같은 우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던 장신구들에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신구를 떼어내는 것은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은 내려놓겠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들은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裝身具를 떼어냄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장신구를 떼어내어 버리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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