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 5:20~27>
□ 나아만이 한센병을 고침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아 온 한 소녀로 부터 자신의 나라에 엘리사 전지자가 있는데 그에게로 나아가면 한센병을 고침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아만은 즉시 왕의 친서를 갖고 은 십 달란튼와 금 육천 개와 의복을 열 벌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내어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대접하는 것에 대하여 화가 난 나아만은 돌아가려고 했지만 종들의 만류로 돌아가지 않고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썩어 문드러지고 피고름이 나던 피부가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회복되어 깨끗해졌습니다.(14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나아만은 자기의 나라로 먼저 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15절)라고 했습니다.
□ 왜 에리사는 예물을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16절)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이 오늘날로 계산하면 약 100억 원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거절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왜 엘리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않았을까요?
이방인의 재물이었기 때문입니까? 예물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유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왕하 4장을 보면 엘리사에게는 자신을 따르는 배곱픈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엘리사는 나아만이 가져온 그 예물을 받지 않았을까요? 나아만의 고침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나아만이 한센병으로부터 고 침을 받음이 오직 은혜로 되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엘리사가 나아만 이 가져온 예물을 받았다면 나아만은 분명히 은혜로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값을 주고 당연히 고침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나아만이 대가를 지불했고 엘리사가 그 대가를 받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오와 사랑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값이 지불되는 것은 어떤 것도 은혜가 아닙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예물을 거절하므로 나아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음을 깨닫고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라고 간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나아만이 가져온 감사의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 게하시는 예물을 받음
그런데 엘리사가 받지 않는 예물을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받았습니다.(20절) 게하시는 엘리사가 나아만이 가져온 그 많은 받지 않고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불만이 싹텄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급히 나아만 일행을 뒤따라 갔습니다. 나아만의 일행을 향하여 나아간 게하시는 평안의 인사를 나눈 다음 엘리사가 에브라임으로부터 온 두 제자를 위하여 은 달란트와 옷 두 벌 만을 요구했습니다.(22절)
그래서 나아만은 은 두 단란트와 옷 두 벌을 주었습니다. 게하시는 나아만으로 받은 그것들을 자기의 집에 감추었습니다.
그러면 왜 게하시는 엘사가 받지 않은 예물을 뒤좇아가서 받았을까요?
탐욕, 탐심 때문입니다.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온 그 많은 예물을 보자마자 마음에 탐심이 생겼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보는 순간 소유하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탐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한 것입니다. 게하시가 엘리사가 거절한 그 예물을 받은 것은 바로 탐욕 때문입니다.
□ 탐욕의 지배를 받으면
첫째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탐욕이 게하시를 지배하기 시작하니까 그다음부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을 향하여 나아갈 때 어떤 자세로 나아갔습니까? 게하시는 나아만을 향하여 나아갈 때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반드시 그 예물을 받아 돌아오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탐욕이 이미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게하시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맹세까지 하여며 예물을 거절하였는데 게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맹세까지 하며 그 예물을 받았습다.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 이용한 것입니다. 또 게하시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탐욕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탐욕의 지배를 받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둘째, 영적 분별력을 잃게 된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책망하면서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면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26절b) "지금이 어찌 은을 받고 옷을 받을 때이냐" 무슨 말입니까? 지금을 깨어 있을 때이지 예물을 챙길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전리품도 취할 때가 있고 취하지 말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탐욕에 눈이 어두워 예물을 받아 챙기는 일에만 앞장섰던 것입니다. 탐욕의 지배를 받게 되니 신앙의 양심이 무뎌졌습니다. 나아만으로부터 얼마의 예물을 받는 것이 죄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탐욕을 품으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영적 감각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비전도 보이지 않고 당장 눈앞의 이익과 물질만 보입다.
□ 게하시에게 임한 저주
엘리사는 탐욕 때문에 나아만으로부터 예물을 받아 집에 숨겨둔 게하시를 책망한 다음 그를 향하여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27절) 게하시는 엘리사의 저주대로 나아만의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손들까지도 한센병 환자가 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게하시가 지은 죄에 비해 하나님이 너무 심한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가 지은 죄에 비해 그가 받은 형벌이 너무 엄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게하시가 지은 죄는 단순한 도덕과 윤리적 차원의 죄가 아닙니다. 게하시의 죄는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삯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한 것입니다. 우리는 게하시가 받은 이 저주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고 은혜를 모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크고 무서운 죄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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