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 1:10>
♣ 주께 합당하게 행하라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이제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살라고 권면합니다. 여기 "합당하게"라는 말은 옷을 잘 맞춰 입는 것처럼 적절하고 어떤 가치의 품격에 부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도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엡4:1)라고 권면하였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도 "복음에 합당헤게 생활하라"(빌1:27)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주께 합당히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만 하고 거기서 끝나버린다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무슨 이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지 그 동기를 점검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일고 묵상해 보라고 말합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면 그것이 설령 잘못된 선택이었을 지라도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결정을 내리십시오. 문제는 내 마음입니다. "내가 얼마나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 왜 주께 합당히 행하여야 하는가?
첫째, 범사에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
왜 우리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하게 행하며 살 때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의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을 기쁘게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고후5:9)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어떤 고난도 심지어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살전2:4)
이것을 보면 사도 바울의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이 땅에 자신이 존재하는 삶의 이유였고 자신의 인생의 최고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고 말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바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의 종으로 이 세상 신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속해 있던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둠속에 있던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며 귀신을 섬기던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고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롬14:18)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소속과 신분이 바뀐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진리안에서 행할 때 하나님이 지뻐하십니다.(요삼1:3) 그 밖에도 우리가 서로 사라아고 툥서할 때, 세상을 의자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때, 고아와 나그네를 대덥할 때, 한 영혼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둘째,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 위힘.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며 살아야 합니까?
그 두 번째 이유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착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오지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선한 일, 착한 행실을 인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는 누구보다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엡2:10a: 딛2:14)
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 구원하셨습니까?
"선알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받는 자로서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기 위함.
왜 우리가 주께 합당히 행하며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주께 합당히 행하며 살 때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벤후3:18a)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을 하루 아침에 되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은 한 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번의 깨달음, 한 번의 경험이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체험적 신앙 통해서 성장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를 알자 힘써 여호아를 알자"(호6:3)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용된 '알자'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야다'입니다.
이 말은 아내가 남편을 받아들여 아는 것처럼 상대방과 직접적 관계를 통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언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까?
고난을 받으며 인생의 광야를 지날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고 그 하나님을 경험한 만큼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더 많이, 더 확실하게, 더 깊이 경험하여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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