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하나님을 향한 두 가지 물음<2011.7.24 / 제23권 30호>

꿈 꾸는 소년 2011. 7. 24. 10:22

☞ <마 8 : 23 ~ 27>

 

 기도와 相談 중 聖徒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두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 물음은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지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물음은 "왜 이렇게 주르짖어 기도함에도 不拘하고 하나님이 沈默하시는 지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事實 이 두 가지 물음은 저를 향한 물음이라기 보다 하나님을 향한 물음입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합니까? 왜 何必이면 이런 어려운 일이 내 가정에 내 남편에게 내 자녀에게 아니 내 부모에게 일어나야만 하지요? 아니 왜 그토록 부르짖어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왜 저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침묵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주님을 향하여 던지는 두 가지 질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 갑자기 일어난 風浪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갈릴리 바다는 平穩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평온하던 갈릴리 바다에 갑자기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24절a). 그러니까 평온하던 갈릴리 바다에 갑자기 巨大한 폭풍이 몰려 온 것입니다. 엄청난 파도가 밀려와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를 덮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한 복판에서 만난 이 풍랑은 우리의 인생이 바로 이와 같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배를 타고 航海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갈릴리 바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에 사신분은 아시겠지만 어느 날은 바다가 너무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나 맑고 깨끗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검은 구름과 함께 풍랑이 휘몰아칩니다. 산더미만한 파도가 밀려옵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그렇습니다.

 

 □ 주님과 함께 하는 풍랑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함께 타고 가는 배가 풍랑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만 타고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났다면 이해가 되지만 분명히 주님이 그 배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데 그 배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나아가는 길에 이런 풍랑을 만났다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은 불순종하여 나아가다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고기를 잡으러 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아가다 이런 풍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막4:35). 그렇다면 여러분을 제자들이 만난 이 풍랑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제자들이 만난 이 풍랑이 이해가 되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만 믿으면 모든 인생의 풍랑을 면제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만사가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풍랑도 잔잔하게 되고 꼬인 것들도 잘 풀리고 닫힌 문들도 열려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면 갑작스럽게 豫期치 않는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되면 왜 이런 일이 나와 내 가정에 일어나야만 하느냐며 抗辯합니다. 분명히 내가 예수를 영접했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했는데 왜 이런 풍랑이 일어나야 했느냐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내가 예수를 영접했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했는데 왜 이런 풍랑이 일어나야 했느냐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의 항해에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풍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가정에도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더 크고 더 많은 풍랑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가정에도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여러분이 주님을 믿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더 크고 더 많은 풍랑을 만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면제된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풍랑이 사라진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내 인생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풍랑을 만나고 이해 할 수 없는 인생의 풍랑을 만났지만 풍랑을 잔잔케 해 주실 수 있는 주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 예수께서 주무시는지라

 

 첫째로, 예수님의 平安

 갈릴리 바다의 그 험한 풍랑도 주무시는 예수님의 평안을 깨뜨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풍랑 가운데서도 주무실 수 있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풍랑도 주님 안에 있는 평안을 깨뜨릴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평안은 폭풍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주님의 평안은 하늘로부터 임하는 평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평안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십니다(요14:27).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풍랑 가운데서도 이 평안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沈默 

 지금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 아우성을 치고 '이제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高喊을 지르고 惹端법석을 떨고 있는데 주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立場에서 보면 얼마나 野俗해 보였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깨우기까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기까지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깨우기까지 주님이 침묵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묻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주님이 나에게 침묵하십니까? 왜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주님 내 기도에 대하여 나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침묵하십니까?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親히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던 다윗도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습니다(시13:1).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을 敬畏하며 악에서 떠난자'라고 칭찬하였던 욥도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습니다(욥23:8~). 모세도 미디안 曠野 40년 동안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도 요셉도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침묵하실까요?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할 때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13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창17:1). 그리고 우리가 잘못된 것을 구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은 言約의 하나님이시고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모든 언약의 내용은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라"라는 한 말씀으로 歸結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삼으시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우리를 당신이 원하시는 水準에로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鍊鍛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침묵은 외면이나 등돌림이 아니라 나를 연단하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