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라<2011.7.17 / 제23권 29호>

꿈 꾸는 소년 2011. 7. 17. 22:58

☞ <시 118 : 18 ~ 25>

 

 □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고 경험했던 다윗은 이제 의의 문,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겠노라고 말합니다. "내가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19절)"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20절)"

 여기 나오는 의의 문, 여호와의 문은 동일한 문으로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의 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의의 문,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 가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언제 의의 문,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습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입니다. 고통 중에 축복을 경험하고, 고통 중에 승리를 경험했을 때입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승리와 축복을 경험한 이후 가장 먼저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어것을 보면 다윗은 예배가 가장 먼저임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예배보다 우선 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윗은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했을 때만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을 思慕했습니다(시27:4).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이 자신의 성공보다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보다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된 이후에도 여호와의 문에 들어가 예배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예배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예배가 무시된 축복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통 중에도 예배를 사모하며 예배를 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기도가 응답된 이후에도 승리와 축복을 경험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내가 감사하리로다

 

 그러면 다윗은 왜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합니까? 다윗이 의의 문,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19절, 21절). 시인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사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 가운데 베푸신 그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그 승리를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 주 동안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받은 그 구원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그 승리를 은혜의 寶座 앞에 나아와 선포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올 때마다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의 은총을 노래해야 합니다. 허락하신 그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 승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 감사의 내용

 

 첫째로, 죽음에 넘기지 않음을 因하여 감사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警責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18절)" 다윗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지만 그래도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게된 것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난을 받기도 하고 사방으로 에워사임을 당하였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또 다윗은 자신이 받은 그 고통을 고통으로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억울함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고통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당하면 더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억울함과 분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 육체까지 병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통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나를 警責하심으로 나를 훈련시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나를 敎訓하고 나를 훈련하기 위해 나의 인생 가운데 이런 고통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교훈하고 나를 훈련하기 위해 나의 인생 가운데 이런 고통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심히 나를 경책하셨을지라도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게 됨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둘째로,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었음을 감사했습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22절)" 성경의 무대가 되는 지역은 석회암이 많은 곳이어서 집을 지을 때 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석공의 눈에 들지 않으면 돌이라도 쓰임받지 못하고 버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버린 돌이었습니다. 다윗은 부모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버린 돌이었습니다(시27:10).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 왕에 의해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망다니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정말 버린 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버린 돌과 같은 자신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머릿돌은 한 건물의 가장 중요한 柱礎(주초→주추가 표준어)가 되는 돌을 말합니다. 코너에 세워져 두 벽이 수직으로 세워지는데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두 벽의 무게를 지탱해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버린 돌처럼 쓸모없고 볼품도 없는 연약한 자신을 통하여 골리앗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수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시들을 지어 하나님을 노래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했습니다.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처음에는 버린 돌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관원과 서기관들에게 제사장들에 의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 인생의 대 역전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위대한 인생의 역전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인생의 역전드라마를 경험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奇異한 바로다(23절)"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는 말은 버린돌이 모퉁이 돌이 된 것이 사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到底히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분명히 다윗은 하나님께서 행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행하시면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名手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역전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세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역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역전의 명수이신 우리 하나님은 오늘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와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역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님은 오늘도 버린돌과 같은 저와 여러분을 택하사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