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

[함성호의 옛집 읽기]<18>충남 논산 ‘윤증 고택’

꿈 꾸는 소년 2012. 2. 2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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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24(금)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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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의 옛집 읽기]<18>충남 논산 ‘윤증 고택’

동아일보DB

1%를 위한 자본주의라는 말이 들린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주의가 아니다. 적어도 주의라면 다수를 위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묵가나, 자기 가족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유가나, 내 몸의 털 하나를 뽑는 대가로 천하가 태평해진다 해도 나는 털 하나를 뽑지 않겠다는 양주나, 모두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더욱 횡행할수록 생각나는 집이 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윤증(尹拯) 고택이다. 이 집은 윤증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집이다. 먼저 이 집에 들어서기 전에 집 앞의 방지(方池)가 눈에 띈다. 운조루의 방지와 비교하면 마을과도 잘 어울리고 집의 본채에서 밖으로 툭 튀어 나온 누마루인 사랑채와도 잘 어울린다. 반가로서 안채의 폐쇄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랑채를 외부와 적극적으로 만나게 하는 동시에 누마루로 들어 올려 수직적인 구분을 꾀하고 집 앞의 방지와 마을로 지세와 집의 모양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간다.

사실 이 집은 윤증이 지은 집이기도 하다. 원래 윤증은 다 쓰러져 가는 형편없는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윤증이 가난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윤씨 가문은 대단한 부호였으며, 아버지 윤선거도 그렇고 외증조인 성혼도 당대의 거유였다. 학문적 업적과 부를 쌓은 당대 최고의 명문이 윤씨 가문이었다. 그러나 윤증은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지극히 검소한 성격으로, 오죽 했으면 윤증의 집에 찾아 온 손님이 동구 밖에서 먹은 음식을 토할 정도로, 윤증은 스스로 거친 밥에 거친 옷을 입으며 생활했다.

그런 윤씨 일가의 가풍은 마을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 번은 양잠에 필요한 뽕잎을 양반인 윤씨들이 수탈해서 주민들의 원성을 산 일이 일어났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윤증은 “우리 가문이 선대 이래로 이곳 노성리에 와서 살게 된 지 백년이 넘도록 남에게 원망을 듣지 않았다. 남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씨 집안에선 원망의 원인인 양잠을 지금부터 일절 금지하라”고 명했다. 이것이 윤씨 가문의 종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떡볶이까지 손을 대는 요즘 대기업의 작태로 보면 격세지감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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