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 5:1~20>
□ 예수님은 누구신가? 능력의 主
2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귀신들린 자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면에서, 사람들과의 사회적인 면에서, 자신과의 인격적인 면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영혼을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6~8절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탄에 얽매인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을 멸하려 하신다.
예수님은 자연세계를 통제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지신 그 능력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대적을 향해 선포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이 견고한 진은 무너질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떠나갈지어다."
□ 영혼 구원을 가로막는 마귀의 計略
15절 "예수께서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사람들은 군대 귀신 들렸던 자가 정신이 온전해진 것을 보고,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아무도 귀신 들린 자를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들을 떠나시기를 구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예수님으로 인해 돼지 2천마리가 죽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더 이상의 어려움을 당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귀신은 경제적인 피해라는 전략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 것이다. 참 아이러니(irony)한 장면이다. 더러운 귀신에 들려 구원이 소망이 없던 광인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정상적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므로, 오히려 예수님의 구원을 排斥하게 되었습니다.
귀신들린 광인의 구원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가치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당장에 일어나는 경제적인 손해만을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통해 나타나는 놀라운 구원을 보지 못했다.
□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矜恤이다.
마을 사람들의 간구를 듣고, 결국 예수님은 그 지역을 떠나신다. 예수님의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말씀을 통해 귀신들린 자를 구원하신 이유는 그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구원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存貴한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 대적함으로 범죄하고 말았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임에도, 사탄에게 매여 비참하게 살아가야만 했다. 이 모습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이다.
우리 눈에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 영혼, 버려진 심지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해를 끼치는 영혼조차도 주님은 귀히 여기신다. 왜? 하나님이 모든 인생의 부모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는 낳으신 분이시다. 우리를 기르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부모이기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한 영혼을 所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은 돼지 떼 2천마리에도 나타난다. 예수님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겠다는 귀신의 간구를 허락하신다. 왜? 돼지를 잃어버리는 재산상의 손해와 한 영혼의 가치가 비교 不可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아버지인 주님께서는 한 영혼이 이 천하 만물보다 더 귀하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셨고,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셧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영혼이 소중하다.
□ 나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주님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가? 내가 받은 임금으로, 나의 학력으로 자신을 평가하는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중요하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들보다도 더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이다. 타인이나 나 자신이 아무리 높은 점수를 주어도 하나님이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나는 존귀한 주님의 자녀이다. 자기 아들의 목숨까지 처절히 버리면서 구원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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