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가?<2012.8.26/ 제24권 35호>

꿈 꾸는 소년 2012. 9. 4. 15:27

☞ < 잠 25:13>

 

□ 秋收하는 날의 얼음 냉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더운 여름철의 냉수처럼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反面 우리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추수하는 날에 엄음냉수와 같은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能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13절)" 우리나라의 추수 시기는 가을이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보리와 밀을 5월과 6월에 추수합니다. 그런데 이 때가 바로 가장 무더울 때입니다. 보리와 밀을 추수하느라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목이 마르다 못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느낄 때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냉수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는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했습니다.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는 몸만이 아니라 그 주인의 아음까지 시원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인은 누구일까요? 그를 보낸 이입니다. 충성된 사자를 보낸 이가 누구이십니까? 바로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추수하는 날의 어름냉수는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나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릴 수 있을까요?

 

 □ 충성된 사자

 

 아무나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충성된 자만이 추수하는 날의 엄음냉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忠誠'이란 무엇입니까?

 

  1. 가슴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전을 보면 충성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精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충성이란 '주인의 명령, 혹은 주인의 뜻에 대하여 중심에서부터 우러나는 마음으로 遂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충성이란 "가슴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충성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충성을 행동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충성은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 열심과 행위의 수고만을 충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동 가운데 위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없는 행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충성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정성입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僞善과 假飾으로 행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바로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마음으로부터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고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2.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주인이 맡겨준 그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2:10).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 충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평생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면 주님은 누구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 달란트 받은 자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왜 그 두 사람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을까요? 한 달란트 받은 자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고, 더 많은 것을 남겼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장사를 하여 수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함으로 수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랜 후에 돌아온 주인으로부터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받은 달란트를 오랜 세월 동안 땅 속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고, 있는 것 마저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충성의 반대가 게으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성의 반대는 게으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임기웅변은 충성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3.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하면 너무 巨創한 것만을 생각합니다. 크고 웅장한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두 달란트 받은 자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25:21,23) 또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말씀하셨습니다. 요셉도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다윗도 목동으로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충성은 작은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 누가 충성할 수 있습니까?

 

  1.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하나님은 누구에게 충성을 요구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 충성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충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으 비밀은 맡은 자만이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2.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판단하는 이는 오직 주님이시라고 말합니다(고전 4:3~4).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가는 주님만이 내리실 수 있습니다. 누가 주님께 충성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판단과 평가보다는 오직 주님의 평가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충성합니다.

  오늘도 우리 하나님으 눈은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찾으십니다(시101:6).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얼음냉수처럼 당신의 마음을 시원케 해줄 수 있는 충성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충성된 자에게 상급을 주시고, 이렇게 충성된 자에게 더 크고 위대한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충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시원케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를 언급하면서 "그들이 나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고전16:18)"라고 했습니다. 충성을 통하여 얼음냉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고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祝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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