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멍에를 메고 자유를 얻으라<2012.9.16 / 제24권 38호>

꿈 꾸는 소년 2012. 9. 23. 15:32

☞ <마 11:29~30> 나는 마음이 溫柔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베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나의 멍에를 메라

 

 "나는 마음이 溫柔하고 謙遜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29a)"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참된 쉼과 安息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멍에가 무엇입니까? 멍에란 소가 소레를 끌거나 쟁기질을 할 때 목덜미에 올려놓은, 둥그렇게 구부러진 막대를 말합니다. 이 멍에를 메는 순간 그 짐승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멍에란 자유로운 행동을 못하게 하는 억압과 속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멍에하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오는데, 많은 경우 억압과 속박의 이미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애굽의 멍에를 꺾으며(겔30:18a)"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a)"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들은 죄의 종으로 태어나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죄의 멍에를 꺾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죄의 종으로서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고통의 멍에를 꺾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인하여 온갖 멍에들이 주러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와 고통의 멍에를 꺾으신 주님께서 오늘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역설적인 말씀입니까? 고통의 멍에를 벗기 위해서는, 아니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다시 내 멍에를 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내 멍에란 무엇인가?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 멍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29a)" 주님은 분명히 너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너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임 2천 년 전 우리의 짐을 지고 우리의 온갖 멍에를 꺾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의 멍에를 다 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 짐이 십자가 위에서 풀렸습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모든 고통과 근심과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너의 슬픔의 고통의 멍에, 죄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이 메어야 할 그 멍에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순종입니다.

 예수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순종과 불순종이 멍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렘2:20a)" 이처럼 멍에를 꺾는 것과 결박을 끊는 것이 순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나의 멍에를 꺾으시고 나의 결박을 풀어 주셨습니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과 생각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생각, 주님의 심정,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내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내 뜻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고난의 잔을 마시기 위해, 다시 말하면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 흘리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경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부인이며,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 왜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시는가?

 

 첫째로, 쉽고 가볍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30절)" 내가 져야할 죄의 멍에, 고통의 멍에보다 주님이 지라고 명하신 그 멍에가 쉽고 그 짐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멍에를 메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벼울까요?

 

 ① 방향만 맞추어 나아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멍에는 두 마리(어미와 새끼)가 함께 머리를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미와 새끼가 함께 멍에를 메고 끌고 가는데, 주로 어미가 끌고 가면 새끼는 보조를 맞추어 따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따라가는 새끼 소는 멍에를 메더라도 짐의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멍에 때문에 힘들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쉽고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방향만 맞추어 나아가면 됩니다. 동일한 방향으로 발걸음만 맞추어 나아가면 됩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이 광야의 인생길을 나 홀로 걷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의 멍에를 메고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동행하면 주님께서 그 인생의 멍에와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우리는 방향을 맞추어 주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함께 멍에를 메고 따라만 가면 편합니다. 따라서 가면 길이 열립니다. 까라만 가면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② 주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왜 주님의 멍에가 쉽고 그 짐이 가볍습니까? 주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그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 돌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면 주님이 주신 멍에와 짐은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둘째로, 진정한 자유를 얻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은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그 주님의 멍에가 우리를 자유케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멍에는 속박이라는 의미의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멍에는 메면 멜수록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함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을 고통으로 생각합니다. 속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인생을 삽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면 인생의 재미를 다 잃어버린 것 같고, 주님의 멍에를 메면 더 손해를 볼 것 같고, 주님의 멍에를 메면 더 메임을 당할 것 같아 멍에를 메러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멍에를 멜 때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엄청난 죄악의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멍에를 메십시오. 주님께 메임을 당하십시오. 그 메임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 같지만 그 메임이 우리의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도록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