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17:11~19> -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다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10명의 나병환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절)"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가까이 다가와 소리치지 않고 멀리 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쳤을까요? 그것은 구약의 율법이 나병을 否定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나병환자에 대한 規例 가 나오는데 당시 나병환자들은 부정한 자들로 看做되어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큰 소리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을까요? 그것은 자신들의 상태가 너무 可憐(가엾고 불쌍하다)하고 悲慘(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함)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 만이 그들의 마지막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 부르짖음의 은혜
그런데 이 부르짖음이, 이 외침이 마침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짖음의 은혜입니다. 막 10장을 보면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하여 외칠 수 있고 부르짖을 수 있음이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누가 예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습니까? 자칭 의로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까? 높은 지위를 가졌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한나처럼 마음이 상한 자입니다. 자칭 죄수라 여겨 가슴을 치던 세리처럼, 실패한 사람입니다. 앞을 보지 못한 소경처럼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蔑視와 賤待를 받으며 살던 나병환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心靈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싸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고침 받을 수 없고, 주님이 아니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患難 중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시50:15절a)"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이 여러 악함과 여러 환난과 실패와 절망과 고난으로 인하여 주님이 얼굴을 찾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면 당신은 부르짖음의 은혜를 아는 자입니다. 아니 오늘 환난과 실패와 고통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나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크 소리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면 당신의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당신의 약함은 약함이 아닙니다. 당신의 절망은 절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음으로 주님을 깊이 만날 수 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건지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음의 은혜를 인하여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 順從이 奇跡을 낳는다.
이렇게 10명의 나병환자들이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a)" 예수님은 "너희 몸이 깨끗해졌으니 이제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아직도 자신들의 몸에는 피고름이 흐르고 악취가 나고 있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몸 상태로 제사장들을 향하여 나아간 것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고 순종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약속이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아직 내 손에 잡힌 것이 없어도 오직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도전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순간이 감사가 인생을 결정한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이 똑 같이 고침을 받았지만 왜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를 드렸을까요? 아니 다른 아홉 명의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지만 왜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9명의 나병환자들에게는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역시 믿음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아직 낫지도 않은 자신들의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려고 나아갔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침을 받은 후, 선택의 순간에 감사보다 가름 것을 먼저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고침을 받은 순간 선택이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① 가족에게로 달려가 이 기쁨으 소식을 전하는 것. ② 제사장에게로 나아가 고침을 확인 받는 것. ③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하는 것. 그런데 이 선택이 순간에 다른 9명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9명의 사람들은 가족에게로 나아갔든지 아니면 순종하여 제사장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던 이 한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가족에 대한 기쁨보다, 제사장을 향한 순종보다, 예수님을 향한 감사를 선택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기쁨을 선택하고 제사장을 향한 순종을 선택했지만 이 한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감사를 먼저 선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한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감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도 중요합니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인 것은 감사입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표하였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가족들에게로 가고자 하는 그 마음과, 제사장에게로 가고자 하는 그 마음과, 예수님께로 가고자 하는 그 마음이 경계에서 예수님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감사를 먼저 선택해야 할까요? 감사가 없는 순종은 진정한 순종이 될 수 없고, 감사가 없는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순종에 감사가 없다면 그 순종이 진정한 순종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섬김과 봉사에 감사가 없다면 진정한 섬김과 봉사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예배 가운데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순간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도 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순간에 감사를 먼저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매 순간 순간 감사하십시오. 눈을 뜨는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식탁을 대할 때 일용할 양식이 있음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감기로 코가 막혀도 한쪽 코가 뚫려 숨을 쉴 수 있음을 인하여 감사하고, 양치질을 하다가고 아직 닦을 수 있는 이가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순간순간 만남을 주심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순간순간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그 감사의 순간들이 모여 당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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