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17:11~19>
□ 감사를 뒤로 미루지 말라.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불지 말라.",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들지 말라." 이런 속담들이 있습니다. 이런 속담들은 뒤로 미룸으로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미적미적하고 뒤로 미루다 狼狽를 보는 경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감사를 뒤로 미루지 말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10명의 나환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길거리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주에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나음을 받은 순간 길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만이 곧 바로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감사했습니다(14~16절). 그러나 9명의 사람들은 감사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들에게느 제사장에게로 나아가 자신의 몸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고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사마리아인은 감사를 뒤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고침을 받는 순간 그 현자에서 감사했습니다. 곧바로 주께로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감사를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깨달음이 오면 곧 바로 순종해야 하고 곧 바로 감사해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 현장에서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감사를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될까요? 첫 번째 이유는, 사탄이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틈을 타면 감사에 대한 마음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全的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우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아깝다는 인색한 마음이 듭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뒤로 미루면 하나님과 멀어져 結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혜와 감사는 언제나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자는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에 대한 감사가 사라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간다는 反證이기도 합니다.
□ 감사는 믿은의 尺度이다.
예수님은 10명이 다 고침을 받았지만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예수님은 분명히 "네 감사가 너를 구원했으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돌아와 자신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이것을 믿음으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보시기에 감사와 믿음은 같다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바로 믿음의 표현임과 동시에 믿음의 척도인 것입니다. 누가 감사합니까? 믿음이 있는 자가 바로 감사합니다. 상황이 좋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가 잘 돌아간다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分量, 믿음의 크기를 알려면 그 사람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상황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이 문제도 아닙니다. 감사는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믿은 생황을 오래 했다 할지라도 내 입술에 불평과 원마이 쏟아져 내린다면 내 믿음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믿음의 赤信號가 켜긴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월리엄 로우'라는 분은 '엄숙한 부르심'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했다든가, 금식을 많이 했다든가, 혹은 慈善을 많이 베풀었다든가 한 사람이 아니라, 凡事에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우리의 믿음의 척도입니다.
□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는다.
주님은 돌아와 감사하는 사마리아인 한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말이 참 중요한데 희랍어 원어에는 "SOZO"로 되어 있습니다. "SOZO"는 "위험에서 건짐 받아 이전의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온전한 변화, 인생전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감사하지 않는 다른 9명의 사람들은 나병인 육체의 질병만을 고침 받았지만 돌아와 감사한 이 한 사람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이 아픔과 상처까지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는가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께 돌아와 감사함으로 구원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은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인생관, 가치관, 삶의 의미와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케리 슉 목사님은 자신의 책, 『내 生涯에 마지막 한 달』에서 열 명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열 사람 모두가 선물을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포장지를 벗겨서 진짜 선물이 무엇인지를 확인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9명이 사람들은 선물을 받았지만 그 선물의 포장지 속에 진짜 감추어져 있는 선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했던 그 한 사람은 선물의 포장지를 벗겨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구원의 선물을 받아 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돌아와 감사하는 이 한 사람에게 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전깃불을 주시고, 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보다 더 밝은 천국을 주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먼저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복을 주십니다.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에 우러러 축사하심으로 일어났습니다. 또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까? 예수님은 무덤의 문을 열어 놓으라 명하신 다음 하늘을 향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명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도 감사하십시오. 인생이 밤 가운데서도 감사하십시오. 진짜 복 있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감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감사는 충복의 통로요, 기적의 시작입니다.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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