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이것이 바로 감사입니다<2013.1.20/ 제25권 3호>

꿈 꾸는 소년 2013. 1. 27. 22:57

☞ <눅 17:11~19>  [나병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다]

 예수께서 에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으지라 15.그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9:1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제사장들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가다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마이안인 한 사람만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과 감사를 한 사람의 비율이 바로 9:1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9:1의 비율은 깨어지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9:1의 비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딤후3:1~2). 세상 끝 날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입에는 감사보다 불평과 원망이 더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감사하며 기뻐하며 사는 사람보다는 불평하며 원망하며 짜증과 한숨 가운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 선택의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하라

 

 그러면 왜 9명의 사람들은 주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한 사람은 왜 돌아와 감사를 드렸을까요? 고침을 받고 난 이후 한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주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9명이 사람들은 고침을 받은 순간 자신을 생각하며 그 축복의 결과들을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10명의 고침 받은 사람들은 함께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함께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함께 주님을 불렀습니다. 함께 믿음으로 순종하여 제사장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깨끗해지는 순간 모두 함께 기뻐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서로의 생각이 서로 달랐습니다. 병이 나은 그 순간 9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깨끗해진 몸, 부드러운 피부, 멀쩡해진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다음엔 건강한 몸으로 가족들을 만날 것을 생각했습니다. 내 가족들은 얼마나 기뻐할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축복의 결과만을 생각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고침을 받은 자기의 몸만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고침을 받은 결과만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고침 받은 한 사람, 사마리아인은 고침을 받은 그 순간 가장 먼저 치유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아니 유대인도 아닌 개 처럼 취급받고 살아가는 이방인인 자신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신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신을 그렇게 깨끗하게 해준 예수님을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는 것보다 먼저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 9명의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축복 속에 살면서,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축복이 열매를 인하여 기뻐하면서도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을 잊어버리고 축복의 결과만을 인하여 기뻐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바로 9명이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며 살기 전에 먼저 나에게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03편 2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 감사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고침을 받은 사라마리아인 한 사람은 고침을 받은 순간 자신의 나음을 보고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5절). 고침을 받은 한 사람은, 고침 받은 그 자리에서, 고침 받은 그 길거리에서, 곧바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예수님께 돌아와 그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감사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는 것.

 

 왜 고침 받은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까?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려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6절)" 고침 받은 한 사람은 예수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감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 입니다. 예배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뜻은 발 "엎드린다." "무릎을 꿇는다." "존경을 표시한다" 원래 왕 앞에서 엎드려 땅 바닥이나 그 발에 입 마춘다는 뜻에서 由來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 감사는 예배이다.

 

 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까? 왜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시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출3:12). 왜 하나님께서 患難 날에 우리를 건지셨습니까? 그것 역시 하나님을 榮華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시50:15). 고침 받은 한 사람 사마리아인들은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고침 받은 다른 9명의 사람들은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마음의 감사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9명의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마음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로 돌아와 榮光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으로는 감사했지만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침 받은 그 한 사람은 돌아와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감사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예배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아니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여러분들 역시 그 아홉명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감사는 바로 예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