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 16:6 ~ 10> 아론은 자기를 위한 贖罪祭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7.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8.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내보내는 염소)을 위하여 할지며 9.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 속죄일이란?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일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날입니다. 속죄일은 유대인 달력으로 7월 10일을 말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속죄일에 일년 동안의 모든 죄을 사함 받습니다.(30절) 하나님은 분명히 "이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 모든 죄를 淨潔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날이겠습니까? 이 날은 자신들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 받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6장 31절에 보면 이 날을 "안식일 중의 안식일"이라고 하였습니다.
□ 죄를 가리우라
7월 10일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 이론은 정결하게 몸을 씻고 먼저 수송아지를 잡아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속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단에 피어 있는 숯을 향로에 가득 담고 휘장을 열고 지성소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엔 향 가루를 숯에 뿌려 향의 연기로 속죄소를 가리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의 뚜겅을 말합니다. 그 다음엔 수송아지의 피를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번 뿌립니다. 다음엔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그 피를 수송아지와 마찬가지로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립니다.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하는 일은 속죄소를 향이 연기와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뿌려 그 죄를 가리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언약궤 안에 있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보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대표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표적인 은혜가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표하는 것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를 拒逆하는 죄를 지었고 만나를 주신 것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였고 계명을 주었지만 그 誡命을 지키지 못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죄를 들여다보시면 우리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은 그 죄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향의 연기로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로 그 죄를 가리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 아사셀 염소
8절을 보면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두 마리 중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속죄 제물로 드립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의 염소는 이미 속죄의 제물이 되어 그 피가 속죄소에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지성소에서 속죄를 드리고 나온 대제사장은 남은 한 마리의 염소를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내어보냅니다.(10절) 그럼면 이기 아사셀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사람은 '아사셀'을 광야에 있는 어떤 절벽이나 위험한 장소로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사셀을 광야에 살고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 즉 마귀나 악한 영으로 봅니다. 그런데 만일 성경에 나오는 아사셀을 惡靈이나 괴물로 본다면 기독교는 큰 넌센스에 빠지게 됩니다. 귀신을 위하여 제물을 드린다는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귀신에게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뜻이지 사단 마귀에게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사셀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아사셀을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염소'를 뜻하는 '에르'와 '제거하다, 없애다'를 뜻하는 '아젤 azel'이라는 말이 결합되어 죄를 없애는 염소입니다. 그러므로 "아사셀을 위하여"라는 말은 죄를 없애주는 염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죄를 轉稼시켜라
대제사장은 살아 있는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합니다.(21절) 왜 염소의 머리에 안수를 합니까? 바로 죄를 전가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고난을 받고 죽음으로 내 죄 값을 치러야 하는데 네가내 대신 내 죄를 뒤집어쓰고 고난을 받고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손을 얹고 안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수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모든 죄를 아룁니다. 다사 말하면 모든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안수만 한다고 해서 죄가 전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죄가 전가되는 것입니다.(요일1:9) 죄는 자백이 되어야 사함을 받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가 안수를 통하여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로 전가시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사53:6) 그래서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2천 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케 하셨습니다. 아직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그에게로 옮기셧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 값을 완벽하게 지불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이 믿음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 曠野로 내어 보낸 염소
이렇게 안수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덮어 쓴 염소는 無人之境의 광야로 나아가 그곳에 놓임을 받습니다.(22절) 죄를 덮어쓴 염소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광야에서 그곳에서 놓임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빨간 리본을 단 채, 털이 뽑히고, 맞아 찢어지고 더럽혀진 이 아사셀 염소는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거친 광야를 헤매이기 시작합니다. 아사셀 염소는 육신의 아품과 버려진 아품에 울부짖습니다. 낮에는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광야를 헤매다 기진맥진하여 낭떠러지 같은 곳에 떨어져 죽기도 하고 사나운 사자나 이리들에게 잡혀 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죄를 덮어쓰고 광야로 보냄을 받은 아사셀 염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모든 죄를 덮어쓰고 광야로 내어 쫓기을 당한 아사셀 염소가 자신들과 멀어질 때 자신들의 죄도 멀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로 내어 쫓김을 당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아사셀 염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동이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에게 멀리 옮기실 것을 보여줍니다.(시103:12) 그리고 그 사함 받은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주일에 두 마리의 염소처럼 나를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
'오륜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린 돌이 머릿돌로<2013.4.7/제25권 14호> - 김정우 목사 (0) | 2013.04.12 |
---|---|
세상이 堪當할 수 없는 사람<2013.03.31/제25권 13호> (0) | 2013.04.12 |
감사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2013.03.17/제25권 11호> (0) | 2013.03.24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2013.03.10/제25권 10호> (0) | 2013.03.10 |
J[Joy] virus를 傳染시켜라 <2013.03.03/제25권 9호> (0) | 2013.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