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버린 돌이 머릿돌로<2013.4.7/제25권 14호> - 김정우 목사

꿈 꾸는 소년 2013. 4. 12. 14:53

☞ <시 118:22~24>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 <벧전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신비

 

 오늘 우리는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신비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한 번 버림받은 돌이 다시 선택을 받는 일은 분명히 예삿일이 아닙니다. 전문가인 건축가가 버린 돌이라면, 그것은 버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버렸다면 분명히 좋은 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성경은 그렇게 버림받은 돌이 나중에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은 건축에서 나온 격언인데, 건축에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못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늘 逆說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건축의 격언을 인생에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렸다면, 그 당시에는 별 볼일이 없어 보였는데, 시대가 가면서 그 돌이 眞價를 發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의 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 시대의 전문가들이 나를 버렸다면 참으로 섭섭하고 아플 것입니다. 자존심도 구겨지고 인생이 두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극한 시련을 통과하고 값진 돌이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놀라운 일입니다. 다 함께 기뻐할 만한 일인 것입니다.  

 

 □ 믿음의 본질

 

 이처럼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신비가 바로 우리 믿음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참된 모습은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신비를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참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버림 받은 돌이 쓸모 있는 돌로 변하는 신비를 체험하곤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신비를 가장 깊이 묵상한 분을 예수님이었습니다.(막 12:10) 예수님은 마가복음 12장에서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소작인들이 주인이 보내는 모든 종들을 다 죽이는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을 주인이 그의 '아들'을 보내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야기를 마치면서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즉 예수님은 '버린 받은 돌'이 '머릿돌'이 되리라는 시편 118편의 말씀 속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자신의 길을 본 것입니다. 사실 당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메시야 예언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서기관들,  정신적인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 예배를 책임졌던 제사장들,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 왕, 그리고 로마의 정의를 어깨에 짊어진 본디오 빌라도, 모두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한 마지로 온 세상이 그를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 한 명은 그를 팔았으며, 수제자는 세 번이나 맹세하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머릿돌로 세우셨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너무나 要緊한 모퉁이 돌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 이 신비를 붙든 베드로

 

 그런데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이 신비를 베드로가 다시 붙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성령의 능력으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칩니다. 이 놀라운 힐링 사건 때문에 산헤드린은 그를 불러 그 경위를 추궁합니다. 바로 그 때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0~12) 베드로는 더 이상 두려움 가운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 앞에서 이 세상의 가장 확실한 기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다시 그의 편지에서 이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벧전 2:4~8) 그가 볼 때 예수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4절)이었습니다. 즉 예수는 택함 받은 돌이요, 보배로운 돌이요, 요긴한 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왜 그 어떤 사도들이나 제자들보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였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반석'이라는 이름을 맏았기 때문입니다.(마 16~17) 그리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석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산산조각 나버린 조약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반석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었을까요?

 

 □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놀라운 경험

 

 사실 세상에서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고 고백합니다.(시 118:23) 그런데 시편 118편의 시인과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버림받은 상처를 잘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 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여기에 말씀과 성령의 사역이 있습니다. 이 변화는 말씀과 묵상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 속에 변화를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시인과 베드로는 바로 하나님께 이런한 은헤를 渴求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한 후, 모든 것을포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평민이 되었고, 서민이 되었고, 자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갈릴리의 오숫가에서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세 번이나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린 돌을 모퉁이 돌 되게 하는 분임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실 버림받은 돌이 머릿돌이 되는 것은 종교개혁가였던 루터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편이다. 나는 여러 번 이 시편에 이끌렸다. 그리고 이 시편은 나를 수많은 患難에서 건져내었다. 제왕도, 왕들도, 지혜자도, 모사도, 성도들도 나를 도울 수 없었을 때, 이 시편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루터는 로마 교황에게 버림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개혁의 모퉁이 돌이 되었으며, 독일의 국부가 되었고, 근대 문명이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이 시인과 예수님과 베드로와 루터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참된 모습이며, 주님 나라의 백성은 누구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특히 꿈을 잃고 소외된 젊은이들이 이 말씀 속에서 새 힘을 얻고 믿음과 사랑으로 머릿돌이 되는 꿈을 꾸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재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