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33:26 ~29>
□ 행복의 이유를 말하라
주님 때문에 행복한 자는 행복의 이유를 이 땅의 사람들에게 알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오는 것입니다.(벧전3:15a)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늘 소망에 관한 물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 사람들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옵니까? 행복한 삶의 모습을 볼 때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절망할 수밖에 없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자로 살아갈 때 그들은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평안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느냐, 무엇이 그리 행복하냐며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행복한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그늘이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그 행복에 대한 이유를 張皇하게 늘어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이래서 불행하고 저래서 불행하다며 장황하게 불행의 이유를 쏟아 놓습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행복한 저와 여러분은 입을 열어 행복의 이유를 말해야 합니다.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내가 왜 행복한 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왜 행복한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왜 행복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도다"(26절)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저와 여러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아 행복한 자가 된 저와 여러분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을 받아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성경을 보면 원래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은 당신의 자녀들을 돕기 위해 하늘을 타고 하늘 위에서 당신의 위엄을 나타내신 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늘을 날면서 내가 이제 구원받은 백성들을 도우실 것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29절b)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칼이 되어 주심으로 도우십니다. 방패는 방어용 무기로서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도우신다는 의미입니다. 칼은 공격용 무기로써 영적 전쟁에 있어서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어주심을 가장 많이 경험한 사람은 바로 다윗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28:7)
다윗은 하나님께서 영과의 칼이 되어 주심으로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고난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어려움도 있고 고난도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셔서 방패가 되어 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나의 處所가 되기 때문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나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27절)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영원하신 그 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는 집을 처소라도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어디입니까? 바로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에는 우주보다 더 크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시간과 공간에 매임을 당하지않으시는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그 성전에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은 어디일까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는 곳이 성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성전은 어디입니까? 이 시대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는 어디입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바로 성전입니다.(고전3:16) 왜 예수믿고 구원받으 저와 여러분이 행복한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몸을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안아 주심
그런데 오를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나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27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이 자세는 하나님이 팔로 우리를 안으실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계시면 어머니의 팔은 내 아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팔이 내 아래 있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다는 말은영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안고 계신다는 말이고 내가 하나님에게 안겨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팔은 영원하신 팔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영원하신 팔로 당신의 자녀된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처소에는 하나님의 안아주심이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그 능력이 팔로 자녀 된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안아주심이 있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품 안에 안겨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내 영혼이 얼마나 안전하고 행복하십니까?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고 평안해 보입니까? 얼마나 행복해 보입니까? 그런데 오늘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기지 못한 성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하나님의 품은 넓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품은 따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와 눈물을 다 감싸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외로움과 고독도 다 품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응어리도 다 녹여줄 수 있습니다.그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여원한 처소가 되십니다. 그리고 그 영원하신 팔로 나를 받들어 안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품에 있는 자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의 처소가 되어 주시고 영원하신 그 팔로 나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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