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목사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39)] 우정에 대해서

꿈 꾸는 소년 2013. 9. 9. 09:22

[방선기 목사의 생활신앙(39)] 우정에 대해서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합 대표)
2011년 01월 14일 (금) 13:12:07 기독신문 ekd@kidok.com

 
먼저 스스로 좋은 친구가 되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


   
  ▲ 방선기 목사  
우정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과 다르고, 결혼하여 부부 간에 나누는 사랑과는 다르지만 그 두 사랑들 사이에서 반드시 누려야 할 사랑이다. 친구는 좋은 친구든 나쁜 친구든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친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친구와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것은 크리스천의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가장 위대하고 모범적인 우정의 모습은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 그들이 예수님의 친구라고 하셨다(요 15:13-14). 예수님은 자신의 구속 사역을 친구의 우정으로 표현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친구들이며 성도들과 예수님의 관계는 우정의 영적 모델이 된다는 뜻이다. 우정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렇게 예수님이 직접 알려주셨다.

성경에 나오는 우정의 가장 좋은 예는 역시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우정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으며(삼상 18:1, 20:17) 그랬기에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가 자기 대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아버지 사울에게 저주를 받으면서까지 친구 다윗을 사랑했다. 요나단의 우정은 단순히 친밀한 감정이나 동료의식을 넘어서서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진한 우정이다. 이런 친구를 가진 다윗은 정말 복이 있었지만 요나단 자신에게도 이런 우정이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일터와 세상에서 이런 멋진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크리스천의 우정은 친구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된다. 함께 어울려 다니거나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진정한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과는 표현이 다르지만 우정은 본질적으로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친구는 친구를 위해서 희생을 하거나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나 요나단이 다윗을 위해서 큰 희생을 한 것은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하는 친구라야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에게 마음에서 나온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잠 27:6, 9). 물론 이 충고는 친구에 대한 진정한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욥의 친구들이 했던 비난과 정죄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 딴에는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친구에게 상처만 주고 문제 해결도 불가능했다. 친구에게 맞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친구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까운 친구였던 사람들의 우정이 금이 가는 경우는 한 사람이 좀 더 앞서 갈 때 일어나기 쉽다. 앞서 가는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시기심이 싹틀 때 우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도 바울이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한 귀한 교훈(빌 2:3)은 크리스천들이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꼭 유념해야 할 조언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친구 간의 우정을 배반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시 38:11, 41:9). 예수님도 친구라 불렀던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셨다. 그러니 세상에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면 너무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말라. 우정을 보여준 친구에게 배신당한 예수님의 아픔을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

세상에서는 사랑 때문에 친구가 되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비롯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잠 14:20, 19:4,6). 그런 친구는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의 친구 관계는 그렇게 끊어질 때 당황스럽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친구 관계에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믿음이 있다면서 우정을 배반하거나 별 이익이 없다고 친구를 떠나는 것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크리스천은 좋은 친구를 만들거나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믿음의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진정한 우정은 자신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다가가서 그들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는 관계까지 발전할 수 있다.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많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주님은 아마도 우리에게 좋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질문하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하실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었는가?’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때 그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