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9:27~30>
한 때 대한민국의 조미료 중 제일이 '미원'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5년 인공조미료 '다시다'가 등장하면서 미원의 牙城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카콜라와 펩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4년 이전까지 펩시는 코카콜라를 따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부터 펩시는 코카콜라의 매출을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코카콜라가 탄산음료만 고집할 때 펩시는 상품의 다양화를 꾀하며 변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부랜드만을 믿고 시대에 따른 변화를 추구하지 않던 코카콜라는 뒤처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처칠은 사관학교를 꼴찌로 졸업했지만 영국의 수상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끌어 존경을 받고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나중 된 자였지만 점점 더 잘 되어 먼저 된자들보다 더 영향력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먼저 된 자가 있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성경생활을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히12:1b)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30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는 누구인가?
첫째,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야의 출생과 구원의 계시를 위하여 한 민족을 선택하셨는데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다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제사와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이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메시야의 출생과 구우너의 계시를 위하여 특별하게 선택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참 복을 많이 받은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은 민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 된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 생각하며 다른 민족들을 멸시하였습니다. 그토록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가 된 된 것입니다.
둘째로, 부자입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는 부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언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물이 많은 청년이 근심하며 따나갔을 때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부자는 아마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는 누가 뭐라해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자가 재물이 많은 故로 영생을 포기하고 돌아갔을 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느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먼저 된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부자입니다. 부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부자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먼저 된 자였습니다. 사실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부가다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면서 부자로 산다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특권입니까? 가난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자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게 그는 부자이기 때문에 마음이 富饒하여 영생을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부자는 부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지만 그는 탐욕 때문에 그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 나중 된 자로 먼저 된 자는 누구인가?
첫째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27절) 무슨 말입니까? 그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나갔지만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부르심을 입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나를 따르라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주님이 말씀하실 때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부모와 친척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새로운 세상이 임하는 날에,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버리는 자들에게 대하여 잊지 않으시고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왕국의 보상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28~29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버리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파종하는 수고가 없으면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주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말씀을 하신다음 30절에서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가 누구입니까?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자기의 것을 버릴 수 있는 자입니다.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은 수 있는 사람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다음 마태복은 20장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결론으로서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에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는 누구입니까? 마지막 5시에 부름을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한 자입니다. 새벽에 아침에 들어가 일을 하는 자는 고용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5시에 들어간 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가 바로 나중 된 자이지만 먼저 된 자인 것입니다.
□ 아직 인생의 경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은 경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먼저 된자일지라도 오늘 내 삶에 안주하고 주님 안에서 내려 놓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아니 내 삶을 에워싸고 있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간다면 당신을 머지않아 나중 된 자가 되고 말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부족함이 많다 할지라도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아니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당신은 나중 된 다로서 먼저 된자가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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