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생명을 선택하라<2013.10.06/ 제25권 46호>

꿈 꾸는 소년 2013. 11. 24. 23:06

<신 30:15~20>

 

 □ 인생은 선택이다.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廣野 생활을 淸算하고 가나안 征服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의 앞에 생명과 사망과 저주를 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19절) 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두셨습니까?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운명에 맡겨 인생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생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결국 선택의 기로에서 생명과 복이든지, 아니면 죽음과 저주든지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 죽음과 저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러면 선택의 기로에서 죽음과 저주를 선태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도 반드시 망할 것이라" (17~18a) 죽음과 저주를 택한 것은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입니다.(출20:5) 그래서 우상숭배를 하는 자를 향하여 "나를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할까요?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하지를 만들어 숭배하였습니까?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출32:1) 우상숭배의 근원에는탐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탐욕을 따라 선택합니다. 탐욕 때문에 죽음 선택하고, 저주를 선택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을 인하여 사주팔자를 보고,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를 하고, 운세를 보고, 점을 칩니다. 푸닥거리를 하는 것 역시 사망을 택하고 저주를 택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탐욕 때문에 음란과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빠지는 것도 사망을 택하고 저주를 택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탐욕 때문에 음란과 근심과 두려움 가운데 빠지는 것도 사망을 택하고 저주를 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음란과 근심, 두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이것들 역시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작은 죽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탐욕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고, 탐욕 때문에 주술을 하고, 탐욕 때문에 근심과 염려와 두려움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

 

 그러면 왜 우리는 생명과 복을 선택해야 합니까?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내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19절) 왜 우리는 사망이 아닌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저주가 아닌 복을 선택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살기 위해서 입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해서 생명을 택하고" 우리가 생명을 선택하고 복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생명을 선택하고 복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16절a)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20절a) 생명을 택하고 복을 선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기로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입니다. 선택을 하고자 할 때 우리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오늘 내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16절a)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聽從하며"(20절a)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아도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말씀 앞에 내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말씀을 선택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합니다. 아니 어떤 분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젊은 형제와 자매들 가운데는 성경의 말씀이 자신을 束縛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11절)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실천 불가능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하늘에 감추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믿음으로 일어나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으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말씀이 내 입과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신30:14)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과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입과 마음에 두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14:15,23)

 

 둘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택하고 복을 택하는 것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20절a)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어린 아이처럼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광야는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아시아에서 당한 여러 환난을 이야기 하면서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9)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큰 환난과 풍랑을 만나게 하십니까?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 권력과 돈을 의지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은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납니까? 부분적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4)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착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