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6:9~12>
□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도 약 1,900여명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불려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붙여졌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남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72구절 나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엘리야에게 7번 사용되었고, 엘리사에게는 無慮 28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4번이나 등장합니다. 엘리사는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인물들 가운데 가장 많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엘리사인 것입니다.
□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첫째로,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렀습니다.(딤전6:11~12) 왜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갑니까? 왜 오늘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분들이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쉽게 넘어집니까? 내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지라도 내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하면 세상이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고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한 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건강하든지, 장애가 있든지, 돈이 있든지, 화려한 직업을 가졌든지 그렇지 않든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내 자신의 가치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내가 처한 환경과는 상관없이, 나의지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자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역사가 있는 자입니다.
언제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불러졌습니까? 엘리사가 과부의 기름 그릇에 그릇에 기름이 가득차는 기적을 행하였을 때입니다.(왕하4:7) 엘리사가 언제부터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습니까? 죽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을 때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여인이 엘이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17:24)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스승이었던 엘리야보다 훨씬 더 많은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이 어떻게 엘리사의 삶 가운데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그 성령께서 엘리사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2장을 보면 엘사는 자기의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할 때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함께 나아갔습니다. 요단을 건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왕하2:9절a)고 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2:9절b) 엘리사는 엘이야에게 역사하셨던 그 성령의 역사가 자신에게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가 그렇게 멋지고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므로 엘리사는 스승에게 역사하셨던 그 성령의 역사가 자신에게도 갑절로 임하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사 외에도 많은 선지생도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선지 학교까지 있었을 정도니까 얼마나 많은 전지생도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많은 선지생도들 가운데 엘리사에게만 갑절의 성령의 역사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많은 선지생도 중에 갑절의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 있었습니까? 그것은 엘리사의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맡겨준 선지자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는 거룩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거룩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고 엘리야가 승천하는 그 순간까지 그를 따르며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역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수가랴 4장 6절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절b)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돈이 있는 자, 많이 배운자입니까?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여 그 성령의 역사가 있는 자입니다.
셋째로, 영력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시력이 아닌 영력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능력을 '시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사물을 잘 복 수 있는 사람을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육신의 눈으로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을 시력이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을 뭐라고 할까요? 그걸 우리는 영력이라고 말할 수 있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을 감당해 내는 능력을 우리는 영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영력이 대단했습니다. 엘리사는 아람 나라의 모든 작전 계획을 간파해 내었습니다. 아무리 은밀한 곳에서 작전을 세운다 하여도 엘리사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는 것처럼 볼 수 있는 영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나라의 모든 은밀한 작전 계획을 알아내어 왕에게 알려 주고 대비하게 하였습니다.(9절) 그런데 10절을 보면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시력보다 영력이 훨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크로비스 여사는 평생을 소경으로 흑암 가운데 살았지만 이 세상에서 자신을 구속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왕래하는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나의 찬송이라고 말하며 사는 날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겠다고 말합니다. 육안이 열린 자는 우리 앞에 있는 현상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면 현상의 배후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우겨싸움을 당하여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력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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