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6:10~19>
□ 이것이 바로 영력이다
영력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영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Spritual Power를 말합니다. 영력이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기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을 감당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영력이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력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로, 사탄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능력입니다.
당시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나라의 왕은 자기의 신복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세웠스비니다.(8절) 이렇게 아람의 왕과 그 臣僕들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세웠습니다.(8절) 이렇게 아람의 왕과 그 신복들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의논하며 전략을 세웠던 것처럼 악한 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奸巧한 戰略을 세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귀가 奸計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全身甲胄를 입으라."(엡6:11) 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간계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문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전략이 그 만큼 多樣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가정과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전략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때로는 뱀처럼 간교한 방법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때로는 光明한 천사로 가장하여 접근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는 사자처럼 暴惡한 방법으로 공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장점을 가지고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우리의 약점을 가지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사실을 악한 영이 우리를 공격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즉흥적으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를 속이고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간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아람의 왕과 臣僕들이 꾸미는 모든 전략을 看破하였습니다.(9절) 엘리사는 아람 왕의 모든 전략을 미라 간파하여 이스라엘왕에게 알려 주므로 모든 계획이 아람 왕의 침실에서 하는 말까지 다 알아내어 이스라엘의 왕에게 그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한 두 번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10절) 그래서 11절에 보면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11절a) 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아람 왕이 전략을 미리 알아내어 그들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력입니다. 영력이란 마귀의 간계를 간파하여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영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유쾌, 상쾌, 통쾌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두려움이 없는 담대함입니다.
영력은 두려움이 없는 담대함입니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해 엘리사가 머무르고 있는 도단성을 완전히 에워쌌습니다. 그것도 말과 병거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그것도 말과 병거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것을 본 엘리사의 사환은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라고 반응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두려워하는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16절)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상의 군대가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젊은 사환은 두려워하였지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영력입니까? 두려움이 없는 담대함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일을키는 기적을 행하고 주 예수의 부활을 전하자 당시 기득권층인 사두개인과 장로들이 위협하기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며 懷柔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행4:31)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이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押送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배에는 바울을 비롯하여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 배가 유라굴로라는 狂風을 만났습니다. 해도 보지 못하고 별도 보지 못한채 여러 날이 지났지만 風浪은 여전하였습니다. 여러 날을 먹지 못했습니다. 이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輿望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며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던 바울이 배의 한 복판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이여 이제 안심하십시오. 우리 중에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損傷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배단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내고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화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27:24) 다른 사람들은 거친 풍랑만을 보고 거친 바람과 파도의 소리만을 들었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내 곁에 있음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영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죽으므이 순간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말대로 되어지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이 아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할 때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17절a)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종의 눈을 열어 하늘의 군대를 보게 하였습니다.(17절b) 이 번에는 엘리사가 자신을 죽이고자 도단성을 둘러싸고 있는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8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셨습니다.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어진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그들이 사마리아에 들어설 때에 엘리사 다시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니 자신들이 지금 도단성에 있지 아니하고 사마리아 성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선포한대로 그 모든 말이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의 말대로"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책임져 주셨다는 말입니다.(출8:13) 사무엘도 그랬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어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성경을 보면 영력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영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기에 임마누엘 축복 가운데 살기에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땅에 선포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력입니다. 그럼므로 영력은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질 수 없듯이 영력도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력있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사단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사단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기 때문입니다.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기도하며 선포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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