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23:22~26>
□ 살아계신 부모님을 恭敬하라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되 살아계실 때 공경하라고 가르칩미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계실 때에는 잘 보살펴 드리지도 않고 돌아가시면 돌아가시는 날부터 효도를 하려고 합니다. 장례식 때 보면 효도는 혼자 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계명 가운데 다른 계명은 지금 못하면 나중에라도 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회복할 수 있는 계명지만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은 부모님이 떠나시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계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옛 글에 "나무가 아무리 가만히 서 있고 싶어도 바람이 가만히 나두지 않고 흔들어 주며 아무리 자식이 오래 奉養하고 싶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찾아뵙고, 살아생전에 한 번 더 전화 드리고 입맛이 있고 소화를 잘 하실 수 있을 때 맛 있는 것 한 번 더 사 드리고 擧動하실 수 있을 때 용돈 한 번 더 드리십시오. 효도는 살아계신 때 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라
첫째로, 부모를 경히 여기지 않는 것.
"너를 낳는 아비에게 聽從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22절) 부모를 경히 여지 않는 것이 바로 효도이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은 가볍게 여기지 말라 곧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늙었다고, 힘이 없다고, 배운 것이 없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물려줄 재산이 없다고 부모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경히 여기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문맥을 보면 "청종하고"라는 말씀과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경히 여기지 않는 것은 곧 부모의 말씀을 잘 청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의 말씀을 듣는데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말씀 가운데는 반복되는 잔소리도 많이 있고 현실적으로 뒤떨어진 말씀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말씀 가운데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지혜의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세가 드시면 드실수록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도 많이 하시고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말씀도 많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부모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청종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낮아져서 듣는다'는 뜻입니다. 한문으로는 '잘 듣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hearken"으로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청종이라는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진리를 따라 사는 것.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明哲도 그리할지니라"(23절)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라는 말씀은 진리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란?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내용적으로 불변한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내용적으로 불변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효도는 자녀 된 우리가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처럼 불효가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였을지라도 오늘 어머니가 믿는 예수를 믿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진정한 효도는 어머니가 믿는 예수 나도 믿어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진리 가운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 1: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3서 1:4) 믿음의 부모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쁜 일어 없도다"(요3서 1:4) 믿음의 부모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3서 1:4) 믿음의 부모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식의 모습을 볼 때 가장 기쁘고 즐겁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리 안에서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를 즐겁게 해 들리는 것.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24~25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효도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사시게 하고 많은 용돈을 드리고 해외여행을 많이 시켜드려도 부모님의 마음에 근심과 염려를 심어 주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며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아들아 네 마음에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6절)
① 마음을 주는 것.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26절a)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음을 주지 않고 생활비와 용돈만 드립니다. 그리고 부모 공경의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공격의 대상이 아닙니다. 공경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드리십시오. 적은 금액의 용돈이라도 마음을 담아 드리십시오. 전화를 한번 하더라도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전화를 하십시오.
② 부모의 길을 즐거워하는 것.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6절b) 부모님이 살아오신 그 길에 대하여 즐거워해 주는 것이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며 그것이 곧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공경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무겁다는 것은 곧 무게를 인정해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우리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의 삶의 무게를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삶의 무게를 인정해 드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모님이 살아오신 삶의 길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살아오신 인생의 길에 대하여 긍지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도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있듯이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의 길에도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의 길에도 실패가 있고 시행착오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아버지는 그런 인생을 살아오셨느냐"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쉬움이 있고 허물 많은 인생이지만 "아버님, 어머님 정말 잘 살아오셨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정말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정말 훌륭하게 사셨습니다. "부모님의 살아온 인생이 길을 인정하고 기뻐해 드리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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