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광우]문제는 지배구조야, 바보야!
전광우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석좌교수
이달 초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 2014년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26위로 1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은행건전성 순위는 평가 대상인 144개국 중 거의 바닥이고 경영윤리도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정치에 대한 신뢰도나 정책결정의 투명성도 최저 수준이다. 문제의 근원은 국정운영 시스템의 비효율에 있다. 특히 대표적 규제산업인 금융의 낮은 성숙도는 열악한 정치 환경과 무관치 않다. 한편 경쟁력 최상위는 ‘법치와 신뢰’라는 사회적 인프라와 모범적인 거버넌스를 갖춘 나라들이다.
다소 활기를 되찾던 국내 주식시장이 여전히 약세다. 금년도 주가상승률은 세계시장 평균에 훨씬 못 미치고 아시아 지역 최하위다. 국제금융계는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저평가,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나 고령화 리스크 못지않게 지배구조 리스크의 심각성을 꼽는다.
지배구조는 조직의 의사결정 체계와 이해당사자 간의 역학관계를 총칭(總稱)하고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국가운영 전반을 아우른다. 지배구조의 특징은 주인과 대리인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대리인의 행위가 주인의 이익을 벗어날수록 나쁜 지배구조다. 기업과 정부, 교육계나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위탁받은 대리인이 얼마나 주인의 뜻에 충실한지’가 관건이다. 대리인의 ‘주인의식’은 좋으나 ‘주인행세’는 아니다.
국내 기업지배구조 논의의 초점인 재벌체제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총수의 독단과 전횡은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반면 과감한 투자와 강한 리더십은 도약의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2년 전 만년 적자기업을 인수한 후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시가총액 3위로 올라선 SK하이닉스는 좋은 예다. 대기업 비중이 큰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 나아가 소득불균형 완화를 위해서도 재벌 경영체제의 생산적 진화는 필수 과제다.
정작 시급한 문제는 제조업과 달리 절대주주가 없는 은행 중심의 금융권이다. 작금의 KB사태가 보여주듯 신뢰 상실과 경쟁력 추락은 취약한 지배구조에 기인하고 피해는 기업의 주체인 주주와 고객, 직원들에게 돌아간다. 이사회 기능 정상화를 포함한 거버넌스 체계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금융선진화는 요원하다. 대리인이 무능하거나 무책임하면 주인이 나서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국민연금기금의 역할이 관심사다.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민감한 이슈다. 부적절한 경영 간섭과 개입은 물론 피해야 할 일이다. 다만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장기적 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소리는 낼 필요가 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사안은 더욱 그렇다. 그것이 국민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의 의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가관리지수(WGI)에 따르면 정치효율성, 규제의 질 등이 거시적 지배구조의 평가기준이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국회 파행, 주인인 국민과 국익은 외면한 채 대리인 자신의 특권을 챙기는 정치권 모습을 보면 우리의 초라한 지배구조 점수가 놀랍지 않다. 막말 수준만큼이나 후진적인 정치 행태는 사회 전반의 무질서와 부조리의 원인이고 국가혁신의 큰 걸림돌이다.
종교계도 지배구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종교의 일탈이 심한 것은 미스터리”라는 얼마 전 해외 다큐멘터리의 지적은 부끄러운 얘기다. 외부감사가 가장 절실한 곳이 종교단체라는 말도 자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소리다. 대리인인 종교 지도자들부터 거듭나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고 결국 사람에게 달렸다. 제도 개선은 좋지만 성실한 운영이 먼저다. 건전한 지배구조의 핵심은 책임성과 투명성이다. ‘명량’의 이순신 장군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여러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의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전광우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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