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5:14b~19>
□ 나귀의 턱 뼈로 천 명을 죽임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므로 結縛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삼손은 나귀의 새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였습니다.(15절) 성령의 權能이 삼손에게 臨하였습니다. 초자연적인 힘이 삼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삼손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나귀 턱뼈 하나를 가지고 나아가 자신을 향하여 큰 소리를 지르며 복수하고자 달려드는 블레셋 사람들을 쳐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날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만을 가지고 철병거로 무장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인 것입니다.
□ 삼손의 승리가 주는 敎訓
① 성령의 權能을 힘입으라
성경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냉 안에 있는 罪性과 하나님을 對敵하는 이 세상과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 영적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영적 전쟁을 위하여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먼저 성령의 權能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행1:8) 무슨 말입니까?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고 나아가면 100전 100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권능을 갖습니다. 우리는 마른 같지만 권세와 능력을 갖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성령받기 이전에는 두려워하여 숨었고 배신까지 하였지만 성령 받고난 후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받기 이전에는 귀신들린 아이도 고쳐주지 못해 예수님으로부터 責望까지 들었지만 성령받고 난 이후에는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했습니다. 성령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이 堪當할 수 없는 사람들로 살았습니다.
② 나귀의 턱뼈를 取하라
하나님은 全能하신 분이지만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당신의 권능을 나나태심에 있어 뭔가를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를 도구로 상용하사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물이 샘솟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에 들려진 나팔과 빈항아리를 가지고 미디안의 군대를 물리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祝辭하사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다윗의 물맷돌을 도구로 사용하사 巨大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삼손의 경우 나귀의 턱뼈를 사용하여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였습니다.(15절)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일에 도구로 쓰임받은 것들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별 볼일 없고 평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사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 승리가, 이 성취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준비해 놓으신 나귀 턱뼈를 취하십시오. 그 나귀 턱뼈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손을 내밀면 집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달란트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품고 준비한 비전일 수도 있습니다.
□ 내가 천명을 죽였도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만을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명을 쳐 죽였습니다. 블레셋 사람 천명을 쳐 죽인다음 그 널부러진 시신들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쌓아 놓은 시신 더미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였도다"(16절) 자신이 힘과 능력으로 블레셋 사람을 물리쳐 죽인 줄을 알고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승리를 自祝한 것입니다. 엄청난 승리를 거둔 그 순간 삼손은 승리의 根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이 남보다 힘이 많고 자신이 용맹스럽기 때문에 승리한 줄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손의 가장 큰 실수입니다.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승리했을 때 뭔가를 성취했을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죄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였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 목마름의 고통이 가져다 준 축복
나귀 턱뼈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천명을 쳐 죽이고 그것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삼손에게 목마름의 고통이 임했습니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18절a) 그런데 그 목마름이 어느 정도였느냐 목이 말라 죽을 정도의 목마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목마름의 고통이 임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사역하는 사역자에게도 이런 목마름의 고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의 순간이 있습니다.
첫째로, 주르짖어 기도하게 됨
삼손은 그 고통을 인하여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18절a) 삼손이 기도했다는 기록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목마름의 고통을 당할 때이고 또 한 번을 마지막 최후의 죽음을 맞이할 때입니다. 이것을 보면 나쁜 것만을 아닙니다.
둘째로, 주께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니
나귀 턱뼈 하나를 가지고 일 천명을 죽었을 때 삼손은 "내가 천명을 죽였도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목마름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18절b) 자신의 목마름의 고통을 통해서 승리의 근원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이 은혜입니다. 타락한 죄성을 가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봐야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셋째로, 엔학고레의 축복을 경험함
목마름의 고통을 인하여 삼손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한 우묵한 곳을 터치하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왔습니다.(19절) 삼손은 이곳에서 솟아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蘇生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엔학고레란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삼손은 목마름의 고통 가운데 솟아나오는 생수를 마심으로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엔학고레의 생수를 마실 수 있을까요? 목마름의 고통 속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입니다. 어떤 분들은 침묵의 영성만을 강조하고 부르짖어 영성을 貶下합니다. 그러나 침묵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부르짖음의 영성도 중요합니다. 하나님도 고통 중에 있을 때 "내가 부르짖으면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33:3) 그러므로 인생이 힘들고 어려우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 목마르고 고통스러울 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엔학고의 축복이 임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생수를 마실 수 있고 생수를 마실 때에만이 회복이 되고 소생케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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