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6:23~30>
□ 삼손의 悲慘한 최후
삼손은 시작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그런게 삼손의 인생의 마지막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삼손의 비참한 최후를 묵상하며 마지막이 우리에게 주는 敎訓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의 영이 떠남
삼손에 있었던 그 힘의 根源은 긴 머리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이 셨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삼손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손을 자신에게서 여호와의 영이 떠나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20절b) 맨 손으로 젊은 사자의 입을 찢고 나귀의 턱뼈 하나로 철병거로 무장한 천명의 블레셋 군대를 쳐 죽인 삼손도 성령이 떠나시니까 시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어떤 사역도 감당할 수 없고 성령께서 원하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삼손의 비참한 최후는 여호와의 영이 떠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 두 눈이 뽑힘을 당함.
삼손을 붙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삼손의 두 눈을 뽑아버렸습니다.(21절a) 눈은 몸의 등불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잃으면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 눈이 뽑힌 삼손은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도망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두 눈이 뽑힌 삼손은 평생을 어둠 가운데 보내야만 했습니다.
3. 놋줄에 매여 맷돌을 돌림.
두 눈이 뽑힌 삼손은 놋줄에 매여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21절b) 맷돌을 돌리는 일은 소나 나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맷돌을 돌렸다는 것은 짐승과 存在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닫힌 것들도 열리고 묶인 결박도 풀어지는데 여호와의 영이 떠나시자 삼손은 묶임을 당하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4. 블레셋 사람들이 감사이 제사를 그리며 즐거워함.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섬기는 다곤 신이 원수 삼손을 자신들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블레셋의 방백들과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의 원수인 삼손의 포로가 되어 우리가 가운데 있게 된 것은 자신들이 믿고 섬기는 신인 다곤이 우리의 손에 삼손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方伯들과 백성들이 다손 신전에 모여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즐거워했습니다.(23~24절)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름이 冒瀆을 당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이름이 업신여김을 당하시고 모독을 당하시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과 부도덕한 삶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이 가려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롬2:24)
5. 戱弄을 당함.
삼손은 감옥에서 끌려 나와 삼천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재주를 부렸습니다.(25절) 여기서 말하는 재주는 노래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말합니다. 삼손은 다곤 신전의 한 가운데서 광대처럼 억지로라도 웃음을 보이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며 뛰 놀아야만 했습니다. 거룩한 나실인이 조롱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치고 호령하던 영웅이 블레셋 사람들의 노리갯감이 되었습니다.
□ 삼손의 부르짖음
삼손은 다곤의 신전에 끌려나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재주를 부리면서 희롱을 당하는 그 순간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구구에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까?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28절a) 여기서 비록 번역된 단어는 아도나이입니다. 아도나이란 다스리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주인, 주권자, 라는 의미입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주님, 나의 주권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눈앞에 둔 삼손이 비로소 여호와를 '아도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는 나실인이었지만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여호와를 나의 주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의 깊은 터널을 거쳐 이제 지난 날을 회개하며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 되심을 새롭게 인정한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첫째로 "나를 생각하옵소서" 입니다. 이 말은 직역하면 "나를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베풀어 주셨던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생의 마지막 그 순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되찾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를 강하게 하사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입니다. 삼손은 초자연적인 그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강하게 하사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삼손이 말하는 원수는 누구를 말할까요? 블레셋을 말합니다. 삼손은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후에야 이 블레셋이 자기 인생을 실패자로 만든 나의 원수이고 우리 민족의 원수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삼손은 그들이 자신을 감옥에서 끌어낸 다음 다곤이 신전에서 다곤 신전을 찬양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毁損하는하나님의 원수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강하게 하사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삼손의 부르짖는 기도는 정말 간절했습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b) 삼손의 부르짖는 기도 가운데 特徵적인 두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번만" "단번에" 입니다. 이 두 단어를 보면 삼손은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한 삼손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습니다. 삼손이 양 손으로 두 기둥을 붙잡고 힘을 다할 때 웅장한 다곤의 신전이 무너졌습니다. 신전이 무너져 삼손이 살아있을 때 죽인 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30절) 하나님은 죽기를 각오하며 간절히 부르짖는 삼손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실패자였던 삼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희생과 죽음을 각오하며 부르짖는 삼손에게 승리의 은혜, 이김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삼손의 자신의 죽음을 통해 나실인으로서 失墜된 명예를 회복하였고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우상 숭배자들을 죽게 함으로 하나님만이 참 된 신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삼손을 당당히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시작보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작이 좋았는데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시작은 좋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이 더 아름다워야 하고 마지막이 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시기를 원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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