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1:10~16>
□ 모래 폭풍 불어오는 언덕에서
벼랑 끝... 혹시 벼랑 끝에 서 본적이 있으십니까? 한발만 내디디면 수천 길 낭떨어지로 추락하게 되는 그 벼랑 끝... 그 순간이 얼마나 切迫합니까? 그 순간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 자리는 얼마나 우리를 悲慘하게 만듭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래 바람 이는 언덕에 서 있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모두 정신적 恐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과 답답함에 사로잡혀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로하고 의지했던 끈이 끈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끈 떨어진 연처럼 한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기록하는 여호수아의 첫 부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 한 개인의 사건을 言及한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은 사실 국가적 災難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모세가 없이 그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모세가 없이 400년 노예생활을 하던 땅에서 어떻게 풀려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곳은 그냥 가서 차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해서 쟁취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서있었습니다. 그런게 모세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 말씀을 받은 사람
모두가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여호수아였을 것입니다. 이제 민족을 이끌어야할 重大한 사명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깊은 두려움 가운데 서있었습니다. 벼랑 끝, 흐 힘든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바른 판단과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황페한 땅, 벼랑 끝에서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그의 모든 시선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1절 후반부는 그것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隨從者 눈의 아들 여호수아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 視線을 集中하자 그 황폐한 땅에서 하나님이 말씀이 들려왔답니다. 2~9절은 그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벼랑 끝에 서있다고 생각하는 너와 내가 함께 있다... 여기에서 어떤 표현이 계속해서 나타납니까? "내가..." "내가..." "내가..." 8구절 속에 자그마치 7번이나 반복됩니다.
말씀을 듣고 여호수아는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말씀은 언제나 소생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도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평탄한 때도, 어려운 때도, 황폐한 땅에서도, 困苦한 땅에서도, 사업이 잘 될 때도, 사업이 어려울 때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날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말씀하시는 분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습니다."
□ 말씀을 나누는 사람
벼랑 끝에서 여호수아는 그렇게 말씀을 받고 살아납니다. 그런데 말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10절은 간단하게 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에.." 간단한 접속사는 무엇을 뜻합니까?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발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래서...' NIV 성경은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합니다. "So Joshua ordered the officers of the people"(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이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받은 여호수아는 그가 받은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는 각 지파의 지도자를 소환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나눕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준 다음에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그것을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이 말씀을 전하라." 여기에서 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곳이었으며 '두루 다니다'의 히브리어 아바르는 '지나지 않는 곳이 없도록 돌아다니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빠진 사람이 없이 모두에게 이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받는 사람은, 은혜를 받는 사람은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있습니까"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벼랑 끝에서 내 힘으로는 어쩌할 수 없는 벼랑 끝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말씀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믿습니다. 말씀대로 행합니다. 그때 그들은 살아납니다. 나를 살린 그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을 그렇게 말합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그 벼랑 끝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그 벼랑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는 지금 벼랑끝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의 젊음과 血氣, 젊은 날에 이루었던 업적이나 승리를 의지할 것인가, 아님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던 갈림길이기도 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일어섰을 때, 말씀을 붙잡고 함께 일어설 수 있었을 때 적어도 그 벼랑 끝은 오히려 축복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 우리도 이 일을 위해 세움 받았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함께 서려고 발버둥 칩니다. 여호수아 혼자만 살아나서는 안됩니다. 혼자만 위로 받고 힘을 얻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끈으로 연결된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도 함께 끈으로 연결하고 가나안에 이르기 위한 旅程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을 함께 가도록 끈으로 묶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이루었고, 교구와 목장을 이루었습니다. 함께 세우는 그 사역을 위해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 생명 주시는 날까지 그것을 어떻게 堪當할 것입니까? 여호수아는 진을 찾아다니면서 말씀으로 勸勉합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전쟁을 하는 큰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한사람을 만나는 그 일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이제 말씀으로 가득 채워진 가슴을 사랑의 가슴과 따뜻해진 손과 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여호수아는 어려운 삶의 情況과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황폐한 땅, 메마른 땅에서 그 要因을 분석한 데이터와 가까워진 것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사명과 가까워지고, 우리가 꾸는 비전과 가까워졌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나아가는 아침, 하나님과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조금을 여유있게, 조금은 더 따뜻하게 세상을 보고, 누군가 우리 가슴 시린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우자여도 좋습니다. 자녀들이도 좋습니다. 동료여도 좋습니다. 외로운 이웃이어도 좋습니다. 함께 말씀으로 살아나는 세상, 그것이 교회의 꿈이 되고,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어도 주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작아지고, 우리의 야망이 작아지고, 우리의 욕망이 작아질 수 있다면, 그리고 정말 穩全히 주님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 분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수 있다면, 그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면 벼랑 끝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내 사랑입니다." 우리가 온 가슴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가 벼랑 끝에 서있어도 敢히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렇습니다.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으로 내 삶을 채운사람들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꿈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남은 인생의 노래가 되고 主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륜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를 힘입어 감사하라.<제26권 42호 / 2014.10.26.> (0) | 2014.11.05 |
---|---|
시작보다 마지막이 중요하다.<제26권 41호 / 2014.10.19.> (0) | 2014.11.02 |
엔학고레의 祝福을 경험하라<2014.10.05 / 제26권 39호> (0) | 2014.11.01 |
주의 영이 임하시면<2014.09.28 / 제26권 38호> (0) | 2014.09.28 |
軟弱함을 이해하라.<제26권 37호 / 2014.09.21.> (0) | 201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