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그리스도의 平康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제26권 43호 / 2014.11.02.>

꿈 꾸는 소년 2014. 11. 6. 12:02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여기서 "주장하게 하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경기에서 심판관이 룰을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rule in your heart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치 경기에서 심판관이 정확한 룰을 따라 판정을 내리듯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이 말씀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라, 지배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늘 누군가에 의해, 무엇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탐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상처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어떤 영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속신앙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마음을 주도적으로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의 평강이라?

 

 주님은 오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 인데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평강을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평강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이 평강은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14:27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14: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그리스도의 평강은 예수님 안에 있는 평강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을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는 평안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 평강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주어질까요? 이 평강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이 관계가 회복된 사람만이 눌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있는 평강이 아닙니다. 인간이 수고와 노력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평화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평화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말미암아 주어지는 평화는 갈등도 없고 고난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이 평강은 문제가 없어서 누리는 평안이 아닙니다. 갈등이 있고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풍랑의 한 복판에서 누릴 수 있는 평화이고 인생의 밤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 있는 평화입니다.

 

 □ 왜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몸을 무엇을 말할까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내 마음을 주장하게 되면 나 뿐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몸된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도 평강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왜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내가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입니다. 감사와 평강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는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될 때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평강이 가장 기본적인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평강은 가장 기본적인 축복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고, 아무리 좋은 대학을 다니고, 좋은 환경 가운데 살아도 그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평강이 없는 축복은 그 어떤 것도 축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평강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바로 평안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뭡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입니다.(요20:19절)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파송하기 전에도 또 다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0:21)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께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평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은 돈도 아니고 사업의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평강이었습니다. 왜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평강일까요? 그것은 평강이 없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안이 없이는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평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강이기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입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평안이며 모든 知覺이 뛰어난 평안입니다. 인생이 깊은 밤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 있는 평안입니다. 그렇다면 이 평안의 축복을 누가 누릴 수 있을까요? 교회를 다닌다고 모든 사람이 다 이 평안의 축복을 누릴 수 있릴까요? 성경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평강이 임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에 임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절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喜樂이라"(롬14:17)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고 다스릴 때 그 마음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여 성령께서 나를 잡으시면 우리는 그 성령 안에서 세상이 줄 없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