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豊盛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彼此 가르치며 勸勉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 중에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연의 모든 공간이 무엇인가에 의해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을 보면 진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는 공기라 할지라도 질소 78%, 산소 21%, 1%의 미량의 다른 원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주 공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수 많은 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를 지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땅도 방치해 두면 다시 잡초들로 무성해집니다. 무슨 말입니까? 땅도 빈 공간으로 남아있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 비움과 채움
그런데 똑 같은 원리가 영적 생활에도 적용됩니다. 마12장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다 쉴 곳을 얻지 못하게 되자 다시 나갔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떠났던 그 집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은 빈 집으로 있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가서 저 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 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마12:12~45절a) 이것을 보면 빈 집은 위험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회개하고 지난날의 잘못된 옛 습관을 끊어버렸다 할지라도 신령한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빈 집으로 놔두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거나 이전 보다 더 나쁜 상태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비움이 있으면 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비우기만을 하고 채우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내려놓음과 비움만 있고 부어주심과 채워주심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공허할까요? 아니 신앙생활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따분할까요? 그러므로 반드시 비움이 있으면 채움이 있어야 합니다. 비움이 있을 때에 부으심의 은혜, 채우심의 은혜가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1. 왜 그리스도의 말씀인가?
그러면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였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신약은 오신 예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죄인된 우리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1500년에 걸쳐 40여명의 사람들이 기록을 했지만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 속에 거하라.
"거하여"라는 말은 원어로 에노이케오라는 말인데 이 말을 직역하면 "안에 살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나 물체는 내 속에 거하여 살 수 없습니다. 인격을 가진 생명만이 우리 안에 함께 거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거하여 살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말씀을 인격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명으로 인격화하였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문자가 아닙니다. 역사의 책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요6:63) 그러므로 영이요 생명이신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내 생각을 주장하고 나를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엡3:17절a)
3.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거하게 하는 것은?
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시편 기자는 어떤 사람을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시1:1~2) 많은 사람들이 묵상을 명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명상은 자기 속에 있는 생각을 없애 버림으로 그 생각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묵상은 내 생각 속에 하나님으로 충만케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속에 하나님 말씀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말씀을 묵상하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면 주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고 나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됩니다.
② 말씀을 아멘을 받는 것.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생명이라면 우리는 그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살전2:13)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고후1:20)
□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거하시면?
1. 모든 지혜로 가르치며 권면하게 된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기 시작할 때 하늘의 지혜를 얻게 되고 그 지혜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기 시작하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응답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내 생각을 지배하고 다스리기 시작하면 주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고 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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