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1:26>
"만나매 안디옥을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 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한 때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라는 인사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만큼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다 교회를 떠났을까요?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자는 연약하여 넘어질 수는 있으나 타락하여 교회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떠났을지라도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가, 예수님이 내 인생의 구주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믿는 자가 患亂과 乏迫의 문제로 주님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언론과 메스컴이 기독교를 비난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고 주님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목회자의 비전과 철학이 맘에 들지 않고 성도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주님의 품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는 옮길 수 있을지라도 주님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주님을 인격적으로 확실히 만난 자는 연약하여 넘어질 수는 있었지만 타락하여 주님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목사와 교인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고 목사를 먹사로 부를 만큼 교인들과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바뀌려먼, 교회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아니 세상이 더 이상 교회를 염려하지 않게 하려면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이 종교인이 아니라 진짜 예수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려 나오는 자가 아닌 진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부를 때 처음으로 사용된 이름입니다.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 년 동안 큰 무리를 가르쳤는데 안디옥 사람들이 그 무리를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라고 하는데 그리스도(Christ)라는 단어에 "~ian"라는 접미사를 추가한 것으로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일 년 동안 바나바와 사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며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대하여 삶 자체가 예수님처럼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모습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충성된 사람들이 되어 갔습니다. 누구든지 그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예수가 생각이 날 정도로 작은 예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 輕蔑(깔보아 업신여김)과 嘲弄(비웃거나 까보면서 놀림)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이름은 당시 경멸과 조롱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을 보면 바울이 아르립바 왕 앞에서 審問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바울은 심문을 받는 중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르립바 왕이 깜짝 놀라 이렇게 바울을 責望합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도다"(행26:28절b) 아르랍바 왕은 자신이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었음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닌 조롱이 섞인 호칭입니다.
□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 이 땅에 속한 자로 살지 예수님께 속한 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예수를 보여주는 작은 예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存貴한 일입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삶의 모습을 통해 예수를 볼 수 있고 예수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보다 존귀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은 멋지고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름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칭호는 없습니다.
□ 당신은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이름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만들어 부를 이름이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에 소속된 제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용어도 결코 아닙니다. 전혀 예수를 모르고 예수와는 상관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안디옥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보고 붙인 이름입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b)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외치고 다녀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불려진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방인들, 심지어는 기독교를 경멸하는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방인 성도들이었습니다. 모태신앙인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 믿은지 겨우 6개월, 1년 가량 밖에 되지 않은 초신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성공과 권세와 쾌락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입만 열면 그리스도를 말하고, 그리스도를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세상의 사람들은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오늘 함께 일하는 직장의 동료들은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믿고 있습니까? 오늘 당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은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오늘 나의 남편은 나의 자녀들을 나를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인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인 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이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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