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표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4"
여호와를 기뻐하라.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시 37:1~4>
□ 여호와를 기뻐하라
"2015년 우리 교회 표어는 여호와를 기뻐시게 하라!"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4절)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것.
여호와를 기뻐하는 말의 소극적 의미는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不平하거가 猜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1절) 다윗을 시편 37편에서 악인과 의인을 끊임없이 대조하면서 하나님을 敬畏하는의인들이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 것을 勸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맥적으로 볼 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이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을 할까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자신들이 많은 피해를 당하고 손해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의 亨通 때문입니다. 의인들이 불평하고 시기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고난을 당하고 힘들고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들이 형통하고 繁榮하기 때문입니다.(7절) 8절을 보면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의인들이 악인들의 형통함 때문에 憤怒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行惡者들의 형통을 인하여 불평하며 시기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衰殘할 것임이로다."(2절) 풀과 채소는 빨르게 성장합니다. 그러나 그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길어야 한 철입니다. 한 철이 지나가기 전에 사라지고 맙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악을 행하는 자들의 형통과 번영이 오래가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잠시 잠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여 풀과 같이 베임을 당하게 되고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과 번영을 인하여 하나님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소극적으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느낌, 내 감정,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과는 상관없이 그것을 뛰어넘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바로 그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波爛萬丈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다윗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들과 산에서 숨어 지내며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믿었던 아히도벨의 배신을 경험했고 심지어는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한채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 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한채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 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피난을 떠나는 다윗을 따라오며 돌을 던지고 먼지를 날리면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행하였습니다. 간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그의 남편을 전선에 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허물과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끊임없는 배신과 죽음의 위협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악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까닭없이 猜忌하고 嫉妬하고 죽이려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윗 역시 허물과 약점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자신의 인생 가운데 고난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둘러보면 자신을 죽이려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자신이 일생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 자신이 완전한 삶을 살아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삶 가운데 약점도 있고 넘어짐도 있었지만 다윗은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근거가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은 내 느낌과 감정과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과는 상관없이 그것을 뛰어넘어 주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4절)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소원이 먼저가 아니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내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네 소원이 응답되어지면 내가 기뻐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먼저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에게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고 약속하셨을까요? 마음의 소원을 두고 행하심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소워을 두고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20:4절에서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2:1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하나님은 우리의 밖으로부터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변과 우타리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우리 내면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십니다. 변화된 내 생각으로부터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인지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그것은 내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의 소원이 불타 올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내 소원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어떤 일을 이루시고자 하실 때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마음의 소원을 두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불타 오르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2015년 새해를 시작하는 당신의 마음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로또에 당첨되어 인생이 역전을 경험하는 것입니까?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마음의 소원은 어떻게 하면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주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2015년 여호와를 기뻐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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