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복합적 ‘內戰상태’ 빠진 대한민국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현재 생존해 계신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그보다 더 큰 변화를 겪은 게 아닐까 싶다. 관솔불로 불 밝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전등과 상하수도를 사용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거쳐 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익숙하다. 식민지, 광복, 전쟁, 혁명, 군사정변, 계엄령, 대통령 암살, 개헌 등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구경하기 힘든 일들을 죄다 겪으며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무엇보다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최빈국(最貧國) 상태에서 벗어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룬 세계 10위권 국가에서 노년을 보낸다. 이분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세대가 아닐까?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했다고 자주 거론하지만 사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안 잡힐 수 있다. 최근 200년간의 세계 경제발전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진정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 우리와 비슷한 상태에 있던 나라들은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
그런데 그와 같은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결과 우리는 행복해졌는가?
오히려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자살률 세계 3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했다. 2015년도 세계행복지수를 보면 조사 대상 143개국 중 118위로 최하위권이다. 우리와 비슷한 등수의 나라들로는 팔레스타인, 가봉, 아르메니아가 있는데, 모두 전쟁이나 내전 상태에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는 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루고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을까? 우리는 정말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가 된 것일까?
심지어 청년 세대 중에는 대한민국을 ‘헬(hell·지옥)조선’이라 칭하는 사람들도 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가 불지옥이라는 것이다. 악에 받쳐 스스로를 비난하고 어떻게든 이 나라를 떠나는 게 상책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상은 아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 사회는 복합적인 의미의 ‘내전(內戰) 상태’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우선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제기되는 긴장이 중요한 요인일 테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비롯된 갈등이 더 큰 요인일 것이다.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의 골이 치유가 힘들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다. 폭발 직전 상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중세신학에서 말하는 영혼과 육체가 서로 싸우는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질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마음의 행복 사이에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엄청나게 빠른 성장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발전 자체가 한편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지만, 그런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지금 성장을 멈추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는 ‘현명한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무엇보다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우선 교육에서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청소년들을 한 줄 세우기의 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일부 정치가들이나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풀려서 자신의 정치적·정신적 수단으로 삼는 행태부터 중단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선진국에 여행을 가 보아도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기회가 많은 곳이라는 점을 인식하자.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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