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 1:22~23)
□ 화목의 이유와 目的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까?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責望(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김)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22절)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거룩은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피와 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나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신 주를 위해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단절이 아닌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흠 없고"는 일점의 티도 없이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흠 없는 삶은 무엇을 말할까요?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이 바로 흠이 없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빌2:14)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는 非難(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받을 만한 죄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은 목회 서신에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보면 다니엘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단6:4)
그러면 왜 우리가 거룩하고 欠(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기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이 우리 주님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입니다.(22절)
왜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까? 漸漸(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 聖化(신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성령으로 신성한 인격을 완성함.성스럽게 됨.)되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이 사람들보다 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서 부끄러움이 없고 자신을 향하여서도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려면
첫째,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라
바울은 멎너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 있을 것을 勸勉(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하였습니다.(23절a)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使徒(거룩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 바울이 앞에서 言及(어떤 문제에 대하여 말함.)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믿음에 거하고"라고 말합니다. 여기 "거하고'로 번역된 말은 어떤 장소에 지속적으로 머문다는 것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믿음(기쁜 소식.예수의 가르침.예수에 의한 인간 구원의 길)에 머무는 행위가 현재의 지속적인 행동이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그이 믿음이 지속적으로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한닫고 합니까? "터 위에 서서" 여기서 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고전3:11) 이것을 보면 믿음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었을지라도 지금 믿음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所用(쓸 곳. 쓰이는 바.)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현재를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에도 현재를 무시하고 주로 과거적 해석을 좋아합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차차, 나중에"라는 생각을 심어주어 끊임없이 내일로 미루게 만듭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재입니다.
그러므로 찬양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합니다. 감사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해야 합니다. 평안도 내일 아닌 지금 누려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도 내일로 미루지 말고 기도의 기도의 무릎은 꿇어야 합니다. 헌금도 상황이 좋아지면, 여유가 생기면이 아니라 지금 드려야 합니다. 용서도 오늘 해야지 내일로 미루면 할 수 없습니다. 순종과 헌신도 내일이 아닌 지금 해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도전하는 것도 지금 해야 합니다. 오늘 믿음에 거하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둘째, 福音이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
화목하게 된 자로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려면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23절a) 그렇다면 복음의 소망은 무엇을 말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詛呪(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람)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참소를 물리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광야의 나그네 인생길을 임마누엘(히/Immanuel :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메시아의 이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신약 <마태복음> 그리스도가 예언된 구주(救主)라 하였다.)의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이 내 영혼을 부르실 그 날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없이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入城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그러한 정도로까지.그렇게까지.) 思慕(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함.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름.)했던 주님과 함께 영원히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모든 죄성과 육체의 軟弱(무르고 약하다.)함에서 벗어나 참된 安息(편히 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모든 것들이 바로 복음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당시 골로새 교회 성도들 중에는 천사 崇拜(우러러 공경함.종교적 대상을 우러러 신앙함.), 靈智主義(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지식 또는 그 지식 위에 형성된 종교 체계를 주장하는 종교 사상.), 禁慾主義와 같은 이단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복음의 소망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흔들리는 자들에게 권면합니다.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
□ 복음의 일꾼
믿음에 굳게 서고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것을 권면한 바울은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23절b)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일꾼은 '디아코노스'인데 주인의 명령을 隨行(일정한 임무를 띠고 가는 사람을 따라감. 또는 그 사람.)하는 사람 혹은 시중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나의 주인 되신 주님의 뜻에 복종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복음을 시중드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메섹 途上 (길 위.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도중.)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죽음을 위해 달려 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자신의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서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甚至於(더욱 심하다 못하여 나중에는) 죽은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주리고, 돌에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나중에는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까지 끌려가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도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머물러 있는 그곳에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자녀들에게도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한가지는 바로(도리, 법식, 규정, 규격 따위에 어긋나지 아니하게. 사리나 원리, 원칙 등에 어긋나지 아니하게.)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비밀인 이 복음만이 생명이고, 구원이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사는 자는 자신의 인생을 後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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