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김은호 목사 / 제30권 9호. 2018.13.04.

꿈 꾸는 소년 2018. 12. 20. 07:14

☞ <고후 12:7~9>


 □ 육체의 가시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여러 啓示( 깨우쳐 보여 .사람의 지혜로써는 없는 진리를 가르쳐 알게 .)를 받은 것이 至極(더할 없이 극진하다.)히 크므로 너무(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自慢(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냄.)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7절a)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그 육체의 가시는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眼疾(눈병)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癎(간질.지랄병)疾(症 :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 장애를 일으키는 발작 증상이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 유전적인 경우도 있으나 , 뇌종양 따위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이라고 말하고 캐톨릭에서는 독신으로 살아가는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적인 慾求(欲求 :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 독신의 苦痛(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이라고 말합니다. 

 최근에는 같은 同族 유대인들의 逼迫(바싹 죄어서 몹시 괴롭게 .)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냐?하는 것은 別로([부정을 뜻하는 말과 함께 쓰여) 이렇다 하게 따로. 그다지 다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聖靈(성삼위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영을 이르는 . 기독교 신자의 영적 생활의 근본적인 힘이 되는 본체이다.)의 充滿(가득 참)을 받고능력 있는 삶을 살며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살고자 했던 사도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만 苦難(괴로움과 어려움)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고난의 가시가 주어지는 것만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苦痛(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과 아픔의 가시가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疾病(몸의 온갖 .)일 수도 있고 가난일 수도 있습니다. 남모르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신체적인 障碍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그런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내 자식이 내 인생의 가시일 수 있습니다. 


 □ 바울의 懇求

  그러면 바울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해 너무나(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그 육체의 가시가 떠나기 위하여 세 번 주께 懇求(간절히 바람.)했습니다.(8절) 여기서 세 번은 문자적으로 세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간절히 기도한 것을 상징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몇 번의 기도가 아니라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인하여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를 만나면 주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가시가 주어져도 그것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도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너무 아파 속절없이(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흐느껴 울면서도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을 때 기도했습니다. 


 □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바울은 기도 중에 왜 자신에게 이런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습니까? 너무 自慢(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냄.)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7절) 자만이란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자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割禮를  받은 이스라엘 族屬( 같은 문중이나 계통에 속하는 겨레붙이.)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 었습니다. 12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주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當代(지금 시대.일이 있는 바로 시대.) 최고의 碩學( 학식이 많고 깊은 사람)이요 모든 백성에게 尊敬을 받는 가말리엘 門下(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영적으로도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을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빛 가운데만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하나님께 이끌리어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늘의 榮光(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을 보고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약 27권 가운데 無慮(    수가 예상보다 상당히 많음을 나타내는 .) 13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과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얹어 놓으면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들이 떠나갔습니다. 

 바울은 학문적으로 보나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보나 영적인 체험으로 보나 영적인 恩賜(임금이 은혜로써 신하에게 물건을 내려 주던 . 물건.하나님이 재능)로 보나 영적인 은사로 보나 교만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驕慢(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울이 스스로 교만하여질까 봐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러면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除去(없애 버림)해 달라는 바울의 간절한 기도에 어

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9절a)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육체의 가시가 주는 고통 속에서도 이미 너에게 준 그 하나님의 은혜를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너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주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 주시고 수많은 계시를 보여주시고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신 그 은혜에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을 지라도 그동안 너에게 베풀어준 그 은혜에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실 기도의 거절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바울의 간절한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기도를 다 응답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모세의 기도도 거절하셨습니다.(신3:26절b)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무조건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適切(꼭 알맞다)할 때에 내 영혼에 가장 유익된 방향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 왜 내가 너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너에게 베풀어준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 보이고 그 가시로 인한 아픔이 커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지금 문제보다, 지금의 고통보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훨씬(정도 이상으로 차이가 나게.) 더 큽니다. 

 그러므로 불평과 원망에 앞서 이미 내가 받은 은혜, 내게 주어진 그 은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바울의 反應

  바울은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러므로 도리어(예상이나 기대 또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되거나 다르게.) 크게 기뻐함으로"(9절b)

 첫째로 크게 기뻐했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거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落望(희망을 잃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크게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시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할 때 겸손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주님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10절) 우리 중에 이 육체의 가시 때문에 아파서 울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가시를 가시로만 보지 말고 가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가시만 보지 말고 가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크게 기뻐하였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