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2] 2008.

당신은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김은호 목사 / 제31권 1호. 2019.1.6.

꿈 꾸는 소년 2019. 1. 26. 10:16

2019년 표어

하나님의 大使여, 가라 세상으로!<'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 요 20:19~21


 □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오늘 본문은 安息(편히 쉼)후 첫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사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b)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대제사장으로서 中保( 사람 사이에서 일이 성사되도록 주선하는 사람.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가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은 일을 이른다.)的 기도를 드리셨는데 그때도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8)라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할 때 보냄을 받은 너희는 누구입니까?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包含(어떤 사물이나 현상 가운데 함께 들어 있거나 함께 넣음.)해서 오는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은 2천 년 전 제자들에게만 該當[(주로 다른 명사 앞에 쓰여) 무엇에 관계되는 바로 그것. 어떤 범위나 조건 따위에 바로 들어맞음. ‘들어맞음’]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이 세상으로 보내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본문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b)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波送(遣.일정한 임무를 주어 사람을 보냄)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사망의 權勢(권력과 세력)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생명의 왕 되신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宏壯(아주 크고 훌륭하다.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다.)히 중요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누구로부터 보냄을 받았느냐에 따라 그 신분과 권위와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당신은 그리스도의 대사


 그런데 이렇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만왕이 왕이신 주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勸勉(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懇請(간절히 청함)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和睦(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하라"(고후5:20)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使臣(임금이나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가는 신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신 것은 교회 안에 두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내어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늘 말슴드렸듯이 신앙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닙니다. 바로 세상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신앙ㅎ생활의 무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迎接(손님을 맞아서 대접하는 )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바울은 이 말씀 이후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가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영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대사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학생들을 가리치고 자녀를 訓戒(타일러서 잘못이 없도록 주의를 .그런 .)할 때에도 하나님의 대사처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19절a) "안식 후 첫날"은 바로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날 저녁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고 숨어 있을 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가장 처음으로 하신 말씀을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平康(安. 걱정이나 탈이 없음)이 있을지어다"(19절b)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다음 또다시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평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관심은 평강입니다. 


 □ 하나님의 대사는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평강이었을까요?

 그리스도 대사로 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평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강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 대사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할 때 이 평강은 어떤 평강입니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a)

 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열매로 保惠師() 聖靈(성삼위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영을 이르는 )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평강을 주시기 위하여 和睦祭物(죄로 인하여 깨어진,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바치는 제물. 십자가에 박혀 죽은 예수를 이른다.)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보혜사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셔서 이 평강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세상에 보내시면서 말씀하신 이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입니다. 모든 知覺(알아서 깨달음. 그런 능력./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 위에 뛰어난 평강입니다. 인간의 理性(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다.)의 이성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평강입니다. 風浪( 바람과 물결.混亂과 試鍊)의 한 복판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왕따를 당하고 逼迫(형세가 절박함.바싹 죄어서 몹시 괴롭게 .)을 받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인간관계의 葛藤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곤죽이 진흙과 개흙이 물과 섞여 많이 웅덩이. 헤어나기 힘든 困辱)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이 평강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평안을 가진 자만이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왜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하나님의 대사에게 이 평강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평안을 가진 자만이 평안을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엡6:15)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나아가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우선 자신이 이 평안의 祝福(행복을 행복기독교 하나님이 복을 내림.)을 누려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내 안에 평안이 없는데 어떻게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내 안에 평안이 없고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데 누가 두려움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우리에게는 이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그므로 당신은 自尊心(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자존심이 아니라 대사로 보내심을 받은 내가 하나님의 자존심입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해도 하나님의 자존심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